추사 김정희는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는 중국의 선맥(禪脈)과 선리(禪理)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피력한 내용이 적지 않다. 100권에 달하는 '법원주림(法苑珠林)'과 '종경전부(宗鏡全部)'를 구해 독파하기까지 했다.
선운사의 백파(白坡) 긍선(亘璇· 1767~1852)에게 보낸 '백파망증15조(白坡妄證15條)'와 이에 이은 서한은 선(禪)에 대한 추사의 독선과 기고만장으로 가득하다. '완당집' 중 초의에게 보낸 7번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근래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을 얻었소. 이는 선가의 장서 중에서도 드물게 있는 것이오. 선가(禪家)에서는 매번 맹봉할갈(盲棒瞎喝)로 흑산귀굴(黑山鬼窟)을 만들어 가면서도 이러한 무상(無上)의 묘체(妙諦)를 알지 못해 사람으로 하여금 슬프고 민망하게 하는구려."
'안반수의경'은 들숨과 날숨을 살피는 수행법으로, 소승불교의 초기 경전이다. 당시 선가에서 화두 중심의 선수행만을 고집해서, 깨달음을 묻는 제자들에게 진정한 각성 없이 덕산의 몽둥이와 임제의 할을 퍼부어, 맹목적인 봉[盲棒]과 눈먼 할[瞎喝]이 되고 말았다는 탄식이다. 깨달음이 없는 스승이 깨달음을 구하는 문하에게 우격다짐으로 몽둥이질과 고함만 질러댄다. 제자는 그 몽둥이를 맞고도 길을 몰라 답답하니 그 결과 산중은 캄캄한 산에 귀신만 날뛰는 흑산귀굴이 되어 선풍(禪風)이 나날이 황폐해지고 있다고 일갈했다. 추사는 이 표현을 백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두 번이나 더 썼다. 여기서는 화두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의 맹갈할봉(盲喝瞎棒)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화두가 나오기 전에 깨달은 자가 이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그 증거가 아니냐고도 했다.
깨달음을 묻는데 몽둥이로 때리고 할을 내지른다. 화두만 들면 깨달음이 오는가? 몽둥이와 고함으로 깨닫게 될까? 봉과 할은 방편인데 이것이 목적이 되니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행위가 되고 만다. 추사가 스무 살 위인 대선백(大禪伯) 백파에게 던진 말버릇은 고약하고 일방적이지만, 종종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