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소매 끝에 느껴지는 기운이 선뜻하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산사야음(山寺夜吟)' 시는 이렇다. "우수수 나뭇잎 지는 소리를,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사미 불러 문 나가 보라 했더니,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다고(蕭蕭落木聲, 錯認爲疎雨. 呼僧出門看, 月掛溪南樹)." 저녁까지 맑았는데 밤 들어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온다. 사미승에게 좀 내다보라고 했다가 돌아온 대답이 맹랑하다. "손님! 달이 말짱하게 시내 남쪽 나무에 걸려 있는 걸요." 비는 무슨 비냐는 얘기다.
사실 이 시는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추성부(秋聲賦)'의 의경에서 따왔다. 밤에 창밖에서 수상한 소리가 난다. 빗방울이 잎을 때리는 소리 같고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오는 소리도 같다. 어찌 들으니 기습해온 적병이 말에 재갈을 물린 채 발자국 소리만 내면서 빨리 이동하는 소리 같기도 하다. 동자에게 내다보랬더니 "별과 달은 밝고, 은하수는 하늘에 걸렸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소리가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 하고 대답한다.
구양수가 말한다. "아! 가을의 소리로구나. 가을의 기운은 싸늘해서 사람의 살과 뼈를 찌르고, 그 뜻은 쓸쓸해서 산천이 적막해진다. 무성하던 풀에 이것이 스치면 색깔이 변하고, 나무는 이것과 만나면 잎이 지고 만다. 음악에서 가을은 상성(商聲)이니 상(商)은 상(傷)의 뜻이다. 사물이 늙고 보면 슬프고 상심하게 마련이다(物旣老而悲傷). 7월의 음률을 이칙(夷則)이라 하니, 이(夷)는 육(戮)의 의미로 사물이 성대한 시절이 지나가면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는 의미이다(物過盛而當殺). 윤기 흐르던 붉은 얼굴은 마른 나무가 되고, 옻칠한 듯 검던 머리는 허옇게 센다." 긴 글을 간추렸다.
가을이 왔다. 사물도 절정의 때가 지나면 거둘 줄 안다. 눈부신 신록과 절정의 초록이 지나면 낙엽의 시절이 온다. 그다음은 낙목한천(落木寒天)이다. 결국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천년만년 갈 부귀영화란 없다. 하늘은 인간에게 이 이치를 깨닫게 하려고 성대한 시절이 다 지나갔으니 이제는 그 기운을 죽여 침잠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라고 잎을 저렇게 지상 위로 떨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