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딴짓을 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잦다. 이 책을 보다가 저 책이 생각나 뒤적이다 보면 어느새 아주 먼 곳에 와 있다. 궁금한 구절을 찾겠다고 검색 엔진을 돌리다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넋 놓고 논다. 나중에는 애초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생각 따라 노는 재미보다 급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딴청이 싫다. 연신 걸려오는 전화와 방문객에게 시달리기까지 하면 봐야 할 책만 달랑 들고 낯선 공간 속으로 들어가 순도 높은 몰두의 시간을 갖고픈 마음이 불쑥불쑥 간절하다.
조익(趙翼)이 '도촌잡록(道村雜錄)'에서 말했다. "옛말에 '낯선 곳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곳은 낯설게 하라'고 했다. 이 말이 매우 훌륭하다. 생각이 어지러이 일어나는 것은 익숙한 곳에서이고, 집지전일(執持專一), 즉 온전히 한 가지만을 붙들어 지키는 것은 낯선 곳에서이다. 생소한 곳을 익혀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을 연습해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마음공부에서 가장 요긴한 방법이다. 끊임없이 연습해서 낯선 곳이 날로 익숙해지고, 익숙한 곳이 나날이 낯설어지게 되어야 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공부가 바야흐로 보람이 있게 된다. 집지전일, 네 글자를 벽에다 써 붙여 놓고 늘 보도록 하라.(古語云: '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此語甚好. 思慮紛紜, 是熟處也. 執持專一, 是生處也. 生處宜習之使熟, 熟處宜習之使生. 此心術工夫切要之法也. 至於習之不已, 生處日見其熟, 熟處日見其生. 到此, 工夫方始有效矣. 執持專一四字, 宜書諸壁, 常常見之也.)"
익숙한 곳은 나로 하여금 타성에 젖어들게 하는 지점이다. 생소한 곳은 낯설고 설익어 긴장하게 하는 공간이다. 사람은 가끔 익숙한 것들과 결별이 필요하다. 낯선 곳에서 백지상태로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절실하다. 몽롱하게 보내는 주말의 휴식은 피곤만 더 가중시킨다. 각성은 노력 없이 안 된다. 방하착(放下着)! 꽉 쥐고 있던 것들을 툭 내려놓아야 비로소 내가 보인다. 생경하고 낯선 것 앞에서 내가 객관화된다. 타성에 젖었던 내가 낯설어질 때 삶은 비로소 새로운 생기를 얻는다. 온전한 몰두 속에만이 나는 업그레이드된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