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강진 동문 밖 주막집 뒷방에 서당을 차려 생도를 받아 가르치면서 아동 교육에 대한 글을 여럿 남겼다. 문집에 실린 것 외에 '교치설(敎穉說)' 같은 친필이 전한다. 최근 강진 양광식 선생이 펴낸 '귤동은 다산 은인'이란 책자에서 또 '격몽정지(擊蒙正旨)'란 다산의 새로운 글 한 편을 보았다. 말 그대로 어린이의 몽매함을 일깨우는 바른 지침이다. 글 가운데 독서일월(讀書日月), 즉 독서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인생에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모두 해야 5년에 그친다.11세 이전에는 아직 멋모르고, 17세 이후로는 음양과 즐기고 좋아하는 물건 등 여러 가지 기호와 욕망이 생겨나서 책을 읽어도 그다지 깊은 유익함이 없다. 그 중간의 5년이 독서할 수 있는 좋은 기간이다. 하지만 한여름은 책 읽기가 마땅치 않고 봄가을은 좋은 날이 많아서 즐기고 노는 것을 온전히 금하기 어렵다. 하물며 병으로 아프거나 초상이라도 나서 방문해야 할 일이라도 생기면 다 합쳐 봤자 1년에 100일 정도 읽는 것도 다행일 것이다. 이 500일이 사람에게는 지극히 보배로운 시기다. 이 500일의 시간을 어찌 아끼지 않겠는가? 사람이 12세가 되면 총명과 지혜가 마구 솟아나 마치 여린 죽순이 새로 돋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16세까지 간다."
인지 발달 과정에서 12세에서 16세까지 5년 동안 얼마나 순도 높게 독서하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된다고 말했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이다. 이때 익힌 공부 습관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 특별히 공부에 대한 자각이 없는 아이 때는 말할 것 없고, 이성(異性)에 눈을 뜨고 저만의 취향과 고집이 생겨나는 사춘기로 접어들면 공부에 전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중간의 5년간은 총두(聰竇), 즉 슬기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지혜가 우후죽순처럼 쑥쑥 자라는 가장 보배로운 시간이다. 이때를 허투루 보내면 몇 배 노력으로도 회복하기 어렵다. 공부에도 때가 있고 독서에도 때가 있다. 보석 같은 시간이 반짝반짝 빛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