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馬實)과 왕창(王暢)은 친한 친구 사이였다.헤어질 때 마실이 왕창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가장 좋기는 덕을 세움이요, 그다음이 공을 세움일세. 요행히 우리는 이 태평한 세상에 함께 태어나 벽돌이나 기왓장 같은 신세를 면하고 대장부의 몸을 받았으니 마땅히 후세에 이름을 남겨야 할 것일세. 그럭저럭 살다가 그저 죽는 공생도사(空生徒死)의 삶을 살아 천지 사이를 더럽혀서야 되겠는가?" 청나라 주량공(周亮工·1612~1672)의 '인수옥서영(因樹屋書影)'에 나온다.
그저 살다가 이룬 것 없이 죽는 삶이 공생도사다.무위도식(無爲徒食)은 아무 한 것 없이 밥만 축내며 산 삶이다. 취생몽사(醉生夢死)는 술 취해 살다가 꿈속에 죽는 것이다. 짐승은 죽으면서 가죽과 고기를 남기지만, 되는대로 살다가 죽은 인간은 아무 쓸 데가 없다. 몸을 함부로 굴리는 것만 공생도사가 아니다. 권력에 취하고 재물에 눈이 멀고 보니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잃는다. 권력의 주구(走狗)가 되고 재물의 노예가 되는 삶은 차라리 공생도사만도 못하다. 공생도사야 그 폐해가 제 인생을 탕진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잘못된 사명감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재물욕은 분수에 넘치는 헛짓으로 명분을 어지럽히고 세상에 해독을 끼친다. 김수영의 말마따나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눈 똑바로 뜨고 해보자며 달려든다.
'쇄어(�語)'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남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다행을 알고, 남의 선함을 보고 자기의 선하지 않음을 안다(觀人之不幸, 知己之幸. 觀人之善, 知己之不善)." 구문이 묘하게 엇갈린다. 그 많은 사람을 극한의 고통에 빠뜨려 놓고 우리 일가는 이렇게 잘 먹고 잘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여전히 믿는 듯한 전직 대통령 일가. 입만 떼면 나오는 액수가 그저 편해 몇백억이다. 해서 안 될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우기다가 불리한 것은 기억력 부실 탓으로 돌려 국민을 우롱하는 전직 고위 공직자들. 책임질 일 안 만들겠다며 증인 선서조차 거부한다. 이 선례는 두고두고 악용될 것이 틀림없다. 불선(不善)은 끝내 반성되지 않는다. 제 다행만 기뻐한다. 오불관언(吾不關焉)의 독선 앞에 지켜보는 마음만 자꾸 허물어진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