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삼전도(三田渡)를 건너며 지었다는 시다. "바야흐로 백사장에 있을 적에는, 배 위 사람 뒤처질까 염려하다가, 배 위에 올라타 앉고 나서는, 백사장의 사람을 안 기다리네."(方爲沙上人, 恐後船上人. 及爲船上人, 不待沙上人.) 백사장에서는 나룻배가 자기만 떼어놓고 갈까 봐 애가 탔다. 겨우 배에 올라타 앉고 나자, 저만치 달려오는 사람은 눈에 안 보이고 왜 빨리 출발하지 않느냐며 사공을 닦달한다는 것이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나온다.
발을 동동 구르며 쫓기듯 하루가 간다. 아무 일 없이 가만있으면 불안하다. 금세 뭔 일이 날 것 같고, 나만 뒤처질 것 같다. 조급증은 버릇이 된 지 오래다. 조금만 마음 같지 않아도 울화가 치밀어, 분노로 폭발한다. 몇 분을 못 기다려 50대는 햄버거를 종업원의 얼굴에 집어 던지고, 담배 안 판다고 10대가 60대를 폭행한다.
순간의 욕망을 못 참아 인명을 해치고, 울컥하는 칼부림으로 인생을 그르친다. 술만 먹으면 고삐 풀린 이글거림이 멀쩡하던 사람을 짐승으로 바꿔버린다.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같다. 지위의 높고 낮음도 별 차이를 모르겠다. 지나고 나면 왜 그랬나 싶은데, 돌이켜봐도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유만주(兪晩周)가 자신의 일기 '흠영(欽英)'에서 이렇게 썼다. "일이 없으면 하루가 마치 1년 같다. 이로써 일이 있게 되면 백 년이 1년 같을 줄을 알겠다. 마음이 고요하면 티끌세상(紅塵)이 바로 푸른 산 속(碧山)이다. 이로써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푸른 산 속에 살아도 티끌세상과 한가지일 줄을 알겠다. 하루를 1년처럼 살고, 티끌세상에 살면서 푸른 산 속처럼 지낸다면, 이것이야말로 장생불사의 신선일 것이다."(無事則一日如一年. 以此知有事則百年猶一年也. 心靜則紅塵是碧山. 以此知心不靜則碧山亦紅塵也. 一日一年, 紅塵碧山, 則便是長生久視之仙矣.)
미래의 경쟁력은 속도에 있지 않다. 속도를 제어하는 능력에 달렸다. 느림의 여유는 내 마음에 있다. 깊은 산 속에 있지 않다. 쫓아오는 것 없이 빨라진 시간에 강제로라도 경고 카드를 내밀어 속도를 늦춰야 한다. 허둥대는 것을 빠른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