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변(孫抃)이 경상관찰사로 있을 때 일이다. 동생이 누나를 소송했다. 누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동생에게 검은 옷과 검은 갓, 미투리 한 켤레, 종이 한 권만 주고 나머지는 다 자신에게 물려주었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남긴 문건까지 보여주었다.
둘을 불러 사정을 들어보니 당시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떴고, 누이는 시집을 갔고 아들은 고작 7세였다. 손변이 말했다. "부모 마음이 똑같다. 시집간 딸에게만 후하고 어미 없는 일곱 살짜리 아들에게 박하게 했겠느냐? 아들이 누이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데 재물을 나눠주면 동생을 잘 돌보지 않을까 염려해서 그랬을 것이다. 아들이 자라면 이 종이로 소장을 써서 검은 관에 검은 옷을 입고 미투리를 신고 관에 소송하면 바로잡아 줄 것을 알고 이 네 가지 물건을 남겨주었구나." 남매가 듣고 마주 보며 울었다. 유산을 반씩 나누어 주었다. '역옹패설'에 나온다.
선산부사 송기충(宋期忠)이 3형제의 송사를 처리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면서 막내아들에게 재산을 다 물려주고 첫째와 둘째에게는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사가 일부러 죽은 아비의 처사를 나무라며 풀로 인형을 만들어 묶었다. 인형을 형제의 아버지라 하고 끈에 매어 잡아끌게 했다. 첫째와 둘째는 주저하지 않고 인형을 땅에다 끌었다. 막내아들에게 끌게 하자 그가 말했다. "풀로 만든 인형이라도 아버지라 이름 붙이니 어찌 잡아끕니까?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송기충이 말했다. "아비만큼 자식을 아는 이가 없다더니 막내에게 유독 후하게 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고는 두 아들을 내쫓아 버렸다. '효빈잡기'에 보인다.
산 아버지의 뜻을 놓고 형제간 다툼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시경' '규변(頍弁)'에 "술은 맛나고 안주는 푸짐하다. 어찌 다른 사람이리, 형제이지 남 아닐세. 눈이 내릴라치면 싸락눈이 먼저 오네. 죽을 날 모르거니 몇 번이나 서로 볼까. 오늘 저녁 술 즐기며 군자가 잔치하네(爾注旣旨, 爾殽旣阜. 豈伊異人, 兄弟匪他. 如彼雨雪, 先集維霰. 死喪無日, 無幾相見. 樂酒今夕, 君子維宴)"라 했다. 이겨도 지는 싸움이다. 큰눈이 오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옳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