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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추불두(戶樞不蠹)

상용(商容)은 노자(老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하자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말을 마친 상용이 돌아누웠다.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 즉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다. 허균(許筠·1569~1618)의 '한정록(閑情錄)'에 보인다.

 

명나라 때  육소형(陸紹珩)의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도 비슷한 얘기가 실려 있다. "혀는 남지만 이는 없어진다. 강한 것은 끝내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문짝은 썩어도 지도리는 좀먹는 법이 없다. 편벽된 고집이 어찌 원융(圓融)함을 당하겠는가?(舌存常見齒亡, 剛强終不勝柔弱; 戶朽未聞樞蠹, 偏執豈及乎圓融)"

 

강한 것은 남을 부수지만   결국은 제가 먼저 깨지고 만다.   부드러움이라야 오래간다. 어떤 충격도 부드러움의 완충(緩衝) 앞에서 무력해진다. 강한 것을 더 강한 것으로 막으려 들면 결국 둘 다 상한다. 출입을 막아서는 문짝은 비바람에 쉬 썩는다. 하지만 문짝을 여닫는 축 역할을 하는 지도리는 오래될수록 반들반들 빛난다. 좀먹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붙들고 고집을 부리기보다 이것저것 다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 움직이기 때문이다(流水不腐, 戶樞不蠹, 動也)"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고인 물은 금방 썩는다.  흘러야 썩지 않는다.  정체된 삶, 고여있는 나날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어제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쳇바퀴의 삶에는 발전이 없다. 이제까지 아무 문제 없었으니 앞으로도 잘 되겠지. 몸이 굳어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순간 조직은 썩기 시작한다. 흐름을 타서 결에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 움직이지 않고 정체될 때 바로 문제가 생긴다. 좀먹지 않으려면 움직여라. 썩지 않으려거든 흘러라. 툭 터진 생각, 변화를 읽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강한 것을 물리치는 힘은 부드럽게 낮추는 데서 나온다. 혀가 이를 이긴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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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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