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마장전(馬駔傳)'은 송욱과 조탑타, 장덕홍 등 세 사람이 광통교 위에서 나누는 우정에 대한 토론으로 시작된다. 탑타가 말했다. "아침에 밥 동냥을 다니다가 포목전에 들어갔었지. 베를 끊으러 온 자가 있었네. 베를 고르더니 핥아도 보고 허공에 비춰 살피기까지 하더군. 그러고는 값은 말 안하고 주인 더러 먼저 불러보라는 게야. 그러더니 둘 다 베는 까맣게 잊었는지 포목장수가 갑자기 먼 산을 보며 구름이 나온다고 흥얼대더군. 사려던 사람은 뒷짐 진 채 왔다 갔다 벽에 걸린 그림 구경을 하고 있지 뭐야." 송욱이 대답한다. "네 말이 교태(交態), 즉 사귐의 태도는 알았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사귐의 도를 깨닫기는 아직 멀었어." 덕홍이 나선다. "꼭두각시놀음에서 장막을 치는 건 줄을 당기기 위해서라네." 송욱이 또 대답한다. "네가 교면(交面), 곧 사귐의 겉모습을 알았구나. 그렇지만 도는 멀었어." 이런 식의 종잡을 수 없는 대화가 쭉 이어진다.
흥정을 시작해야 할 판에 서로 딴전만 부린다. 그 얘길 듣고 송욱이 사귐의 태도를 안 것이라고 평가했다. 둘 사이에 흥정이 붙어 거래를 이루는 것을 두 사람이 만나 우정을 맺는 것에 견줬다. 먼저 값을 안 부르는 것은 탐색전을 벌이는 것이다. 카드를 먼저 내밀었다간 기선을 제압당하기 쉽다.
명말 육소형(陸紹珩)의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 이런 말이 나온다. "처음엔 담담하다 뒤에는 진하게, 앞서는 소원한 듯 나중엔 친하게, 먼저는 멀리하다 끝에는 가까워지는 것이 벗을 사귀는 도리이다.(先淡後濃, 先疎後親, 先遠後近, 交友道也.)" 덤덤하게 시작해서 차츰 가까워진다. 처음엔 데면데면하다가 조금씩 친밀해진다. 그런 사귐이라야 오래간다. 만나자마자 죽고 못 살 듯이 가까워졌다가 얼마 못 가 나쁜 놈 하며 등을 돌린다. 급속도로 친해져서 그보다 빨리 멀어진다. 금세 죽이 맞았다가 대뜸 시들해진다. 꼭두각시놀음의 트릭을 뻔히 알아도 커튼으로 줄을 가려주는 예의는 필요한 법이다. 교도(交道), 즉 사귐의 도리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해도 이 간단한 이치를 몰라 세상의 싸움질이 그칠 날이 없다. 장사치의 흥정만도 못하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