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학술회의차 대만에 갔을 때, 묵었던 호텔 로비 벽에 걸린 대련 글씨에 마음이 끌렸다. "고요 속에 언제나 지난 잘못 생각하고, 한가할 땐 젊은 날 읽던 책을 다시 읽네(靜裏每思前日過, 閑時補讀少年書)." 반성 없는 나날은 발전이 없다. 지난 잘못을 돌이켜 오늘의 밑바대로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 앞으로 나가는 것만 알고, 뒤를 돌아볼 줄 모르면 슬프다. 그래서 젊은 시절 읽었던 책을 먼지 털어 꺼내 읽으며, 한 번씩 오늘 내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 보는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이렇게 말했다."이제껏 마음이 육신의 부림 받았으니, 어이 구슬피 홀로 슬퍼하리오. 지나간 일 소용없음 깨달았지만, 앞일은 따를 수 있음 알고 있다네. 실로 길 잃음이 아직 멀지 않으니,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그른 줄을 깨닫는다오(旣自以心爲形役, 奚惆愴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붕 떠있던 허깨비 인생을 걷어내고, 내가 주인 되는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다.
작비금시(昨非今是)! 어제가 잘못이고 오늘이 옳다. 사람은 이렇듯 나날이 향상하는 작비금시의 삶을 살아야지, 잘나가다 실족하는 작시금비(昨是今非)의 길을 가면 안 된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 거백옥(蘧伯玉)은 50세 때 인생을 돌아보곤 지난 49년간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지난날의 나와 과감히 결별하고 자신의 삶을 새로 포맷했다. 50세를 '지비(知非)'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보인다. 명나라 때 정선(鄭瑄)은 자신의 거처 이름을 아예 작비암(昨非庵)으로 지었다. 그 안에서 날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허물을 걷어냈다. 인생의 성찰을 담은 '작비암일찬(昨非庵日纂)'이란 귀한 책을 남겼다.
돌아보면 왜 그랬나 싶다. 눈에 뭔가 씌었던 것이 틀림없다. 욕심을 털고, 탐욕을 내려놓고, 내닫기만 하던 마음을 거두자 숨이 잘 쉬어진다. 지금이 옳았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사람들은 늘 반대로 한다. '그때가 좋았어'만 되뇌다가 금쪽같은 '지금'을 탕진한다. 한꺼번에 만회하려다 더 큰 수렁에 빠진다. 단박에 뒤집으려다 회복 불능이 된다. 로또로 역전되는 인생은 없다. 벼락같은 행운은 더 큰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