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때 권필(權韠 1569~1612)이 시를 지었다. "어찌해야 세간의 한없는 술 얻어서, 제일 높은 누각 위에 혼자 올라 볼거나.(安得世間無限酒, 獨登天下最高樓)" 성혼(成渾)이 말했다. "무한주(無限酒)에 취해 최고루(最高樓)에 오른다 했으니, 남과 함께하지 않으려 함이 심하구나. 그 말이 위태롭다." 뒤에 권필은 시로 죄를 입어 비명에 죽었다.
정인홍 (鄭仁弘·1535~1623)이 어려서 산속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감사가 우연히 묵었다가 한밤중의 글 읽는 소리에 끌려 그 방으로 찾아갔다. 기특해서 시를 지을 줄 아느냐고 묻고, 탑 곁에 선 어린 소나무를 제목으로 운자를 불렀다. 정인홍이 대답했다. "작고 외론 소나무가 탑 서쪽에 있는데, 탑은 높고 솔은 낮아 나란하지 않구나. 오늘에 외소나무 작다고 하지 말라. 훗날에 솔 자라면 탑이 외려 낮으리니.(短短孤松在塔西, 塔高松下不相齊. 莫言今日孤松短, 松長他時塔反低)" 감사가 그 재주와 높은 뜻에 탄복하며 말했다. "훗날 반드시 귀히 되리라. 다만 뜻이 지나치니 경계할지어다." 나중에 그는 대단한 학문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올랐지만 인조반정 때 88세의 나이로 형을 받아 죽었다.
'도덕경' 21장의 말이다. "반듯해도 남을 해치지 않고(方而不割),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입히지 않으며(廉而不 ), 곧아도 교만치 아니하고(直而不肆),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光而不耀)." 반듯하고 청렴한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남을 해치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곧음은 자칫 교만을 부른다.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너무 번쩍거리면 꼭 뒤탈이 따른다. 빛나기는 쉬워도 번쩍거리지 않기는 어렵다. '순자(荀子)'에서도 "군자는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고(寬而不慢),청렴하되 상처주지 않는다(廉而不 )"고 했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병조판서 홍처량(洪處亮)의 신도비명에서 그 인품을 두고 "화합하되 한통속이 되지는 않았고(和而不流), 부드러우나 물러터지지도 않았다(柔而不絿)"고 한 것이나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새 궁궐을 두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나 사치스럽지는 않았다(華而不侈)"고 말한 것도 다 한가지 뜻이다. 사람은 얼핏 보아 비슷한 이 두 가지 분간을 잘 세워야 한다. 지나친 것은 늘 상서롭지 못하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