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루가야 신이치의 '책을 읽고 양을 잃다'(이순)를 여러 날 째 아껴 읽고 있다. 하루에 9㎝ 두께의 한적(漢籍)을 읽었다는 오규 소라이 등 일본과 동서양 독서광들의 책에 얽힌 사연을 다룬 에세이집이다. 벌레를 막기 위해 옛 사람들이 고서의 갈피에 묻어둔 은행잎 이야기는 향기롭고, "전할만한 사람이라면 굳이 자손일 필요는 없다(得其人傳不必子孫)" 같은 장서인이 찍힌 책 이야기는 상쾌하다.
책 제목은 '장자(莊子)' 변무편(騈拇篇)의 '독서망양(讀書亡羊)'에서 따왔다. 장(臧)과 곡(穀)이 양을 치다가 둘 다 양을 잃었다. 경위를 따져 묻자 장이 실토한다. "책에 빠져있었습니다." 곡이 대답했다. "노름을 좀 했어요." 장자가 말한다. "한 일은 달라도 양을 잃은 것은 한 가지다." 종의 일은 양을 지키는 것인데, 책 읽고 노름하다가 본분을 잃고 양을 놓쳤다. '열자(列子)''설부(說符)'에 다기망양(多岐亡羊)의 고사가 나온다. 기르던 양 한 마리가 없어졌다.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되어 찾으러 나섰다. 끝내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연유를 묻자, 갈림길이 하도 많아 끝까지 가볼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망양(亡羊)이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당시에 양이 생계의 든든한 자산인 줄을 알겠다. 독서나 도박의 즐거움은 때때로 양과 맞바꿔 아깝지 않을 정도다. 장자는 외물에 정신이 팔려 본분을 잃은 것을 함께 나무랐지만, 독서와 노름이 같을 수야 없다. 독서는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있지만, 노름을 하면 돈과 명예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장 보러 가던 아내가 독서삼매에 든 남편에게 당부했다. "날이 꾸물꾸물한데, 혹 비가 오거든 마당에 널어둔 겉보리 좀 걷어줘요." 그녀가 돌아왔을 때 보리는 그 사이에 쏟아진 소나기에 다 떠내려가고 없었다. 후한 때 고봉(高鳳)의 이야기다. 그는 이렇게 공부에 몰입해서 큰 학자가 되었다. '표맥(漂麥)'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표맥, 즉 떠내려간 보리는 학문을 향한 갸륵한 몰두를 일컫는 뜻으로 쓴다.
큰 공부를 하자면 양이나 겉보리의 희생쯤은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 원정 도박에 나섰다가 모든 것을 다 잃고 몇 달째 국내로 못 들어오고 있는 어떤 가수가 책에 그렇게 빠졌더라면 하고 아쉬운 생각을 해본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