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
유성룡이 재상으로 있으면서 임진년 당시 신립의 실패를 뼈아프게 여겨, 조령과 죽령 고개에 요새를 설치하고, 탄금대에 성을 쌓게 했다. 또 황해도의 생선과 소금을 강을 따라 산중 고을에 나눠주고, 값을 쌀로 받아 그 이익으로 군량을 비축하게 하는 제도를 시행케 했다. 막 시행하려는 참에 그가 견책을 받아 조정을 떠났다. 제도의 시행도 없던 일이 되었다. 훗날 탄금대를 지나다가 당시 어염(魚鹽)을 저장하던 작은 초가집 두어 칸이 그대로 남은 것을 보고 지은 시가 문집에 남아 있다.
유성룡이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있을 때 일이다. 역리에게 공문을 보내라는 명을 내렸다. 며칠 뒤 공문이 잘못된 것을 알아 고쳐 보내려 했더니, 역리가 며칠 전 보내라고 준 공문을 그대로 들고 왔다. 어째서 여태 안 보냈느냐 묻자, 으레 고칠 줄 알고 안 보내고 들고 있었노라고 했다. 유성룡이 더 나무라지 못했다.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란 말은 원칙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고려의 정령(政令)이 사흘을 못 간다고 중국 사람들이 비꼬아 한 말이다. 세종도 평안도절제사에게 봉수대 설치를 명하고는, "처음엔 부지런하다가 나중에 태만해지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나, 특히 우리 동인(東人)의 고질이다. 속담에 고려공사삼일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헛말이 아니다"라고 한 바 있다.
사흘이 아니라 아침에 변경한 것을 저녁에 다시 고치는 조변석개(朝變夕改)도 다반사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화술로 그럴듯한 핑계를 대지만, 결국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난다. 늘 시작은 거창하였으되 끝이 미미한 것이 문제다. 계획만 잔뜩 세워놓고 실행이 없다. 그다음 계획 세우기가 더 바쁘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은 "인순고식(因循姑息)과 구차미봉(苟且彌縫), 천하만사는 이러한 태도 때문에 어그러지고 만다"고 했다. 인순(因循)은 하던 대로 하는 것이요, 고식(姑息)은 변화를 모르는 융통성 없는 태도다. 여태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다. 구차미봉은 그러다가 막상 문제가 생기면 정면 돌파할 생각은 않고 없던 일로 넘어가거나, 어찌어찌 해서 모면해 볼 궁리만 하는 것이다. 실패를 해도 반성은커녕 재수가 없고 운이 나빠 그렇다며 남 탓만 한다. 대학이나 회사 할 것 없이 실행 없는 발전계획만 무성하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