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사(一字師)

고사성어 2015. 1. 11. 05:29

글 찾기(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일자사(一字師)

조선 중기의 시인 이민구(李敏求)의 금강산 시 두 구절은 이렇다. "천길 벼랑 말 세우니 몸이 너무 피곤해, 나무에 시 쓰려도 글자가 되질 않네.(千崖駐馬身全倦, 老樹題詩字未成)" 김상헌(金尙憲)이 이 시를 읽더니, 대뜸 '자미성(字未成)'을 '자반성(字半成)'으로 고쳤다. 처음 것은 아예 글자가 써지질 않는다고 한 것인데, 나중 것은 글자를 반쯤 쓰고 나니 너무 지쳐 채워 쓸 기력조차 없다고 말한 것이다. 한 글자를 고쳤을 뿐이나 작품의 정채가 확 살아났다.

 

고려 최고의 시인 정지상(鄭知常)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연루되어 김부식(金富軾)에게 죽었다. 생전에 둘은 라이벌로 유명했다. 김부식이 어느 봄날 시를 지었다. "버들 빛은 천개 실이 온통 푸르고, 복사꽃은 만점이나 붉게 피었네(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득의의 구절을 얻어 흐뭇해하는 순간, 허공에서 갑자기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후려갈겼다. "천사(千絲)와 만점(萬點)이라니, 누가 세어 보았더냐? '버들빛은 실실이 온통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게 피었네(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라고 해야지." 과연 한 글자를 고치고 나니, 물오른 봄날의 버들가지와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복사꽃의 정취가 '천(千)'과 '만(萬)'으로 한정 지었을 때보다 더 생생해졌다.

 

송나라 때 장괴애(張乖崖)가 늙마의 한가로움을 이렇게 읊었다. "홀로 태평하여 일 없음을 한하니, 강남 땅서 한가로운 늙은 상서(尙書)로다.(獨恨太平無一事, 江南閑殺老尙書)" 소초재(蕭楚材)가 보고 못마땅한 기색을 짓더니, 앞 구의 '한(恨)'을 '행(幸)'으로 고쳤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 나라가 통일되고, 그대의 공명과 지위가 높고 무겁거늘, 홀로 태평함을 한스러워한다니 될 말입니까?" '행(幸)'자로 고치면 '홀로 태평하여 일 없음을 기뻐하니'라는 뜻이 된다. 장괴애가 진땀을 흘리며 사과했다.

 

이렇게 한 글자를 지적하여 시의 차원을 현격하게 높여주는 것을 '일자사(一字師)'라고 한다. 청나라 때 원매(袁枚)가 말했다.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판이하다.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시만 아니라 삶의 맥락도 넌지시 한 글자 짚어주는 스승이 있어, 나가 놀던 정신이 화들짝 돌아왔으면 좋겠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 세설신어 목록(世說新語索引表)

'고사성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겨울의 공부방  (0) 2015.01.13
세한도(歲寒圖)  (0) 2015.01.12
새 아침  (0) 2015.01.10
아만(我慢)의 반성  (0) 2015.01.09
용서성학 (傭書成學)  (0) 2015.01.08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