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는 제주 유배지에서도 청나라의 최신간 서적을 읽고 있었다.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이 중국에서 구해와 보내준 것이었다. 120권 79책에 달하는 거질의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받고는 크게 감격했다. 추사는 답례로 작은 집 옆에 벼락 맞아 허리 꺾인 낙락장송이 겨우 한 가지 비틀어 잔명을 보존한 형상을 그린 그림을 초묵(焦墨)의 갈필로 이상적에게 그려주었다. 이 그림이 이후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얘기를 만들어낸 저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나중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말은 '논어'에 나온다. 여름철 모든 나무가 초록일 때는 소나무 잣나무의 푸름은 특별나 보이지도 않았다. 낙목한천의 겨울이 되어 모든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자 그제야 송백의 상청(常靑)이 새삼 눈에 들어온 것이다.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추사에게 제자 이상적의 배려마저 없었다면 그는 아마 제주에서 맥을 놓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찬 서리 한번 맞은 적 없던 그가 혈혈단신으로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던져지자 가깝던 친구들마저 등을 돌려 외면했다. 단물을 다 빨고 나면 사귐도 멀어진다. 나야말로 단물 빠진 허깨비다. 그런데 너는 왜 내게 한결같이 대해주는가? 추사는 고맙다는 말 대신 세한도에 붙여 쓴 글에서 이렇게 물었다. 사마천의 말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네가 나를 이익의 잣대로 보지 않은 것인가?
작은 이끗을 앞에 두고도 염치없이 우르르 몰려갔다 몰려오는 염량의 세태 속에서 이 그림 한 장이 전하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 한 장의 그림 속에 당대 한·중·일 문화계를 하나로 묶는 19세기 조선문화의 한 정화(精華)가 집약되어 있음에랴.
고문서 연구가인 박철상씨가 최근 펴낸 '세한도'(문학동네)를 찬찬히 읽었다. 발로 뛴 섭렵과 해박한 고증, 속 깊은 눈썰미로 주변을 훑고 바닥을 헤쳐 여태 누구도 펴지 못한 세한도의 깊은 뜻을 역력히 드러냈다. 금번 그의 기획으로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추사를 보는 열 개의 눈' 전시회도 드물게 보는 알찬 내용이다.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다. 새롭고 낯설고 놀라운 추사가 거기에 있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