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활 솜씨
박제가(朴齊家·1750~1805)의 '어사기(御射記)'를 읽었다. 정조(正祖)가 1792년 10월과 11월에 쏜 활쏘기 기록을 적은 글이다. 정조는 보통 한 번에 10순(巡)을 쏘았는데, 1순은 화살 5대이다. 과녁 안을 맞히면 1점, 과녁 중앙의 정곡(正鵠)을 맞히면 2점으로 계산해서 정조는 보통 70점 이상 80점을 맞히었다. 과녁을 벗어난 화살은 한 대도 없었다. 어느 날은 20순을 쏘아 153점을 얻기도 했다. 대단한 활 솜씨다.
자신의 점수가 계속 향상되자 정조는 정곡의 크기를 조금씩 줄여 가며 연습의 강도를 높였다. 접부채나 곤장에 종이를 붙여 정곡으로 삼기도 했다. 장혁(掌革) 즉 손바닥 크기의 가죽이나 그보다 작은 베조각을 정곡으로 삼아 연달아 다섯 대를 맞힌 일도 있다.
정조는 늘 50대의 화살에서 마지막 한 대는 쏘지 않은 채 활쏘기를 마쳤다. 왜 쏘지 않았을까? 제왕으로서 겸양의 미덕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한 대를 아껴 끝까지 가는 대신 여운으로 남겨둔 것이다. '상서(尙書)'에서 "겸손은 더함을 받고, 교만은 덜어냄을 부른다(謙受益, 滿招損)"고 한 말이 바로 이 뜻이다.
기록이 월등히 우수한 날, 왕은 신하들에게 차등 있게 문방구 등의 상품을 내려주었다. 신하들은 글을 올려 감사를 표했다. 임금은 '시경'의 한 구절을 들어 저마다 직분에 힘을 쏟아 상 없이도 나라의 기강이 굳게 세워져서 임금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기를 바라노라는 덕담을 내렸다. 국왕의 활쏘기 자리는 늘 이렇게 임금과 신하 사이에 백성을 향한 마음을 다지는 다짐으로 끝맺었다. 성대(聖代)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신하들은 이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써서 벽에 걸어, 임금이 신하를 아끼는 마음과 이 거룩한 조정에서 임금을 가까이서 모신 영광을 기념했다.
지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9 피겨 그랑프리 1차 대회 프리 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가 점프 하나를 아예 건너뛰고도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건너뛴 그 점프로 인해 클린을 완성치 못한 것이 아쉽지만, 마저 채워질 날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가 확정된 후, 높아진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입증하는 쾌거라며 귀국 비행기에서 외쳤다는 대통령의 만세삼창이 문득 엇갈려 떠오른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