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급제와 18세 교수
조선조 최연소 대과 급제자는 고종 때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다. 1866년 강화에서 치러진 별시 문과에서 만 14세로 급제했다. 이 신동을 놓고, 조정에서는 너무 일찍 급제했다 하여 4년간 더 학문을 익히게 한 뒤 18세가 되어서야 홍문관직 벼슬을 제수했다. 23세 때는 충청도 암행어사로 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의 탐학을 탄핵했다가 귀양 갔다. 그는 불의와 당당히 맞서 어지러운 시대에 중심을 세우고 살다 간 구한말 최고의 문장가였다.
이덕형(李德馨·1561~1613)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예조참판과 대제학(大提學)을 겸직했다. 조선 500년 동안 31살의 대제학은 이덕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처음 대제학에 천거될 때 권점(圈點) 하나가 부족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김귀영(金貴榮)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랬네. 어린 나이에 연장자보다 먼저 대제학에 이르니 재주와 덕이 노숙해지기를 조금 기다리는 것이 어떨꼬." 덕형이 듣고 기뻐하며 감사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인물을 키우고 단련을 시켜서 나라를 맡겼다. 이끄는 쪽이나 이끌림을 받는 편이나 조급하지 않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 한 나라의 격(格)은 이런 무게에서 나온다. 어찌 나라뿐이랴.
역사상 최연소 교수라며 모 대학이 영입한 18세 교수가 9개월을 못 견디고 한국을 떠났다. 임용 날짜까지 조정해가며, 기네스북에 오를 최연소 교수임을 강조했던 해당 대학이 머쓱해졌다. 그녀는 틀림없는 천재였겠지만, 교수 능력이나 수업의 질까지 천재적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어째 한편의 코미디를 본 느낌이다.
대학들은 앞다퉈 영어 강의 숫자를 못 늘려서 안달이다. 급기야 시조 가사 강의까지 파란 눈의 외국인이 영어로 강의하는 세상이 되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를 영어 강의로 듣는 맛이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다. 어쩌다가 대학의 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뭔가 사람들을 놀랠 만한 일을 벌이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의심을 받는 세상이다.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니까, 어찌 되었든 튀고 보자는 식의 발상들이 도처에서 난무한다. DJ 당시 그토록 본받으라고 외쳤던 그 많은 '신지식인'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기에 대학 꼴이 이런가? 정도(正道)를 걷는 천근의 무게가 새삼 그립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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