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 울돌목에서 명량대첩을 기념하는 축제가 한창이다. 명량대첩은 거북선 한 척 없이 단 13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133척의 왜군 함대를 물리친 기적의 승리였다. 2007년부터 거북선 탐사프로젝트를 계속해온 경상남도청은 10월 말에 2단계 탐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거북선 민간탐사 프로젝트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이 진행 중이다. 이렇듯 충무공과 거북선은 잇단 경기 침체로 시무룩해진 국민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상징 코드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명량대첩에서 보듯 충무공의 승리는 거북선 때문이 아니었다. 원균의 손에 들어간 거북선이 힘 한번 못 써보고 칠천량 앞바다에 가라앉고 만 것만 봐도 그렇다. 정작 세계에 자랑할 문화유산은 거북선이 아니라 충무공이다. 그 망망대해 수십 미터 아래 뻘층을 뒤져 거북선의 잔해만 찾으면 충무공의 정신이 되살아나는가?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충무공의 호국과 애민 정신이요, 모든 위기를 기회로 돌리는 전략가로서의 정보 장악과 냉정한 상황판단이다. 일본 사람들은 충무공의 전술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이미 수십 권의 책이 나왔는데, 우리는 만날 거북선만 찾겠다고 야단이다. 십여년 전 가짜 별황자총통의 국보 지정 소동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1860년 김윤식(金允植·1835~1922)은 '좌수영에 들러(過左水營)'란 시의 5, 6구에서 "어시(魚市)는 떠들썩 저문 성곽 통해 있고, 거북선은 적막하게 빈 언덕에 묶여 있네(魚市喧譁通暮郭, 龜船寂寞繫虛邱)"라고 노래했다. 그 밑에 그가 단 풀이는 이렇다. "충무공이 예전 썼던 귀선(龜船)인데, 지금은 뭍에 놓아두고 쓰지 않는다." 1860년 당시까지 거북선 실물은 멀쩡하니 여수 진남루 좌수영 물가 언덕에 놓여 있었다.
해저유물 탐사에 드는 그 엄청난 비용을 충무공의 전술 전략과 용인술을 포함한 인문학적 연구 지원에 쏟는다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겠는가? 구한말의 문장가 김택영(金澤榮)이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충무공이 거북선 때문에 일본을 깨뜨렸다고 하나, 충무공이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것은 천변만화하는 계책이 신묘했기 때문이지, 어찌 거북선이 한 것이겠는가? 거북선 때문에 이겼다고 한다면 일본 사람들의 정교함으로 어찌 아침에 패배하고는 저녁에 본떠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 말이 옳지 않은가. 발상의 전환이 참으로 아쉽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