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락상평 (苦樂常平)
시도 때도 없이 들끓는 감정 조절이 늘 문제다. 기쁘다가 슬퍼지고 들떴다가 이내 시무룩해진다.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고 괴로움은 늘 곁을 맴돈다. 만남이 기쁘지만 헤어짐은 안타깝다. 이 모든 감정을 딱 잘라 평균을 내서 늘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배지의 다산도 이 같은 감정 처리에 고심이 많았던 것 같다. 강진 병영(兵營)에 병마우후(兵馬虞侯)로 근무하던 이중협(李重協)은 적막한 다산초당으로 찾아와 한 번씩 떠들썩한 자리를 만들어놓고 가곤 했다. 그런 그가 다산도 싫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3년을 그렇게 왕래하던 그가 하루는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기가 차서 곧 서울로 올라갑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다산이 그를 위해 다시 붓을 들었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생겨서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은 동정(動靜)과 음양(陰陽)이 서로 뿌리가 되는 것과 같다. 통달한 사람은 그 연유를 알아, 기대고 엎드림을 살피고 성하고 쇠함을 헤아려 내 마음이 상황에 반응하는 것을 늘 일반적인 정리와 반대가 되게끔 한다. 그래서 두 가지가 그 취미를 나누고 기세를 줄이게 한다. 마치 값이 싸면 비싸게 사들이고 비싸면 싸게 내다 파는 한나라 때 경수창(耿壽昌)의 상평법(常平法)처럼 해서 늘 일정하게 한다. 이것이 고락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다산의 말뜻은 이렇다. '자네 있어 즐거웠고 떠난다니 서운하네. 늘 이리 지낸다면 각별히 즐거운 줄 모르고 그러려니 했겠지? 헤어짐이 아쉽지만 훗날 내가 귀양에서 풀린 뒤 자네가 불쑥 나를 고향 마을로 찾아와 주면 그 기쁨이 배로 될 걸세. 그러니 그간의 즐거움으로 오늘의 슬픔을 맞가늠 하세나. 일렁임 없이 내 자네를 보내려네.'
끝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거센 여울과 잔물결이 섞여 물은 무늬를 이루고, 느린 각성(角聲)과 빠른 우성(羽聲)이 어우러져 음악은 가락을 이루게 되지. 내 벗은 슬퍼하지 말게나." 세밑의 황황하던 마음이 이 한마디에 그만 가라앉는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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