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산길
牛行欲齕路傍黍 (우행욕흘노방서)
소가 길가의 나락을 뜯어 우물우물 새김질하며 가네.
一怒一鞭猶吃去 (일노일편유흘거)
화를 내고 채찍을 쳐도 아랑곳없이 씹으며 가네.
暮歸阿母廚中嗔 (모귀아모주중진)
날 저물어 들어왔더니 부엌에선 어머니가 야단을 치네.
終日西林惡謳語 (종일서림악구어)
온종일 저편 숲에서는 지청구만 들려오네.
18세기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인 우곡(愚谷) 강백(姜栢·1690~1777)은 여행을 즐겼다. 언젠가 산골 마을을 가다가 소를 몰고 가는 농부에게 눈길이 갔다. 그 곁에는 소밖에 없다. 터벅터벅 길을 걸으며 소는 여물인 양 곡식을 뜯어 먹는다. 농부가 깜짝 놀라 이놈 저놈 하면서 채찍을 내리쳐도 능청맞게 새김질하며 걷는다.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는 부엌에서 저녁밥 하던 아주머니가 뭐가 비위가 틀렸는지 야단을 친다. 온종일 소는 지청구만 실컷 얻어먹는다. 농부 내외는 화풀이 상대가 소밖에 없나 보다. 이 산골 마을에서 시인이 들은 대화는 그것밖에 없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