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가?
9322.200611 없는가? 논리적 귀결은 가당치 않아서 그냥 조소의 화살을 방패 없이 흠뻑 마음으로 맞아 제치기로 한다 . 다만 떠오르는 생각을 묻어 버릴 수 없어서 이렇게 늘어놓는다 . 단순 간결을 핑계로 비웃음을 벗어나지 못함을 스스로 알면서 내 푸념 섞인 헛소릴 한껏 풀어 놓는다 . 딴에는 내 속을 후련히 다 털어놓으려 애쓰지만 , 그래도 그만 마음뿐이다 . 마냥 병속에 갇혀있는 심사다 . ‘
없다 ’ 는 말은 ‘ 있다 ’ 를 숨기고 ‘ 있는 ’ 것을 전제로 비롯된 말이다 . ‘ 없다 ’ 는 내 오감에 닿아 표현되는 울에 모든 것을 가두고 드러내는 표현이라 여겨서 생각해본다 . 내 눈에 보이는 것 , 만져지는 것들은 그 것이 보이지 않거나 만질 수 없을 때 ‘ 없다 ’ 고 할 것인데 , 그 것은 멀리 ( 시 공적 제약 ) 떨어져 있거나 가까이 있어도 볼 수 없을 때 ( 인간 한계 ) ‘ 없다 ’ 고 할 테지만 그 실 ( 實 ) 은 ‘ 있는 ’ 것이다 . 또 냄새를 맡아서 사물의 존재를 알게 될 수도 있다 . 그 냄새가 없을 때 없어진 것은 아니다 . 멀리 사라졌거나 다른 물질로 변한 것이리라 . 역시 ‘ 있는 ’ 것이다 . 달리 , 한 때 (
時刻 ) 에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 적 ‘ 없다 ’ 고 할 때 그 ‘ 없 ( 다 )’ 는 것은 그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니 행위의 가능성인 있음을 전제한 말이니 역시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속엔 ‘ 있는 ’ 것이다 .
‘없다 ( 부정 )’ 는 말은 긍정 ( 肯定 ) 의 짝이라고 보아 그 짝 , 긍정이 없으면 부정도 없을 것이다 . 모양 ( 형용 ) 이 어떻고 느낌이 어떻고 하는 말도 그 말뜻의 원의 ( 願意 ) 를 제쳐놓고서는 이 말들은 생겨날 수 가 없으니 처음부터 있는 것을 찾아 내지 못해서 없는 것처럼 된 것이다 . 살피면 , ‘ 흰 모자가 어울리더라 .’ 고 할 때 ‘ 흰 ’ 은 ‘ 검 ’ 은 것이 감추어진 짝의 표현이고 ‘ 모자 ’ 는 민 ( 모자를 안 쓴 ) 머리를 감춘 ( 생각 ) 상태와 짝이 된 표현의 말이 되었다 . ‘ 어울린다 .’ 는 말은 ‘ 그렇지 않다 ( 안 어울린다 ).’ 는 말의 반대 표현이다 . 또 있다 . 이즈음 IT( 정보통신 ) 시대에 파생되는 말마디도 또한 짝 ( 이거나 어원 ; 語源 ) 은 있게 마련이다 . 다 모아서 추려보면 ‘ 있는 ’ 것은 ‘ 없는 ’( 드러나지 않은 ) 것의 짝 말이다 . 세상은 있는 것 , 보이는 것 , 보이지 않는 것 , 생각으로만 있는 것 , 의 모든 것은 그 원천은 단 하나 ‘ 있다 ’ 는 것의 파생 ( 물질 , 비 물질 , 심령 , 등등 ) 물 ( 또는 생각 ) 인 것이다 . 그래서 모두는 하나이고 그 하나는 ' 있는' 그 것이다 . 그 밖의 모든 표현은 원초적으로 없는 것이다 . 즉 모든 사유 ( 思惟 ) 가 바로 세속적 산물인 것이다 . ‘ 인간인 내 ’ 가 없으면 세상도 우주만물도 없는 것인가 ? 아니다 . 본질은 하나 , 곧 표현 불가능하고 우리가 모르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 , 곧 진리의 한 점만이 있을 뿐이다 . 이 점을 나는 ‘ 신 ( 神 )’ 이라고 할 것이다 . 우주도 한 점이 시원 ( 始原 ) 이고 그에 속한 모든 것도 하나이고 가늠 할 수 없는 크기다. 아니 우리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 결국 ‘ 하나 ’ 만 ‘ 있을 ’ 뿐이다 . 그래서 나는 이 하나를 ‘ 신 ’ 격화 한다 . 그리고 믿고 맡긴다 . /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