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자기 마음속을 채운 부피의 공이라고 할 때, 작은 공, 큰 공, 그리고 무한한 공 또는 지극히 작은 점 같은 공이 있을 것으로 치면, 그 공의 크기에 따라서 채워지는 비는 만인이 같다고 할 터이다. 즉 공에 채워지는 것, 희생으로 얻는 행복과 약탈해서 얻는 행복의 크기와 만족감은 그 공의 크기(원주율?:체적?)와 비례한다. 공이 큰 사람의 행복이나 공이 작은 사람의 행복이나 그 비율은 같을 수밖에 없다. 해서 만인의 행복은 고르다고 하겠다.
다만 그가 키운 공의 강도-창조주의 창조 목적에 부합되는가의 여부-에 따라 그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크기도 비례하여 크거나 작거나 할 뿐이다.
그래서 모든 이는 고루 행복할 비율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 채워지는 행복 요인을 잠식한-창조 목적과의 괴리-만큼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怪說(괴설)을 토하는 자유, 또한 나만의 행복이다./외통-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