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해서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고, 쇠바늘이 세 번 부러졌으며, 검게 쓴 글씨가 세 번 뭉개졌다(孔子晩善易, 韋編三絶, 鐵撾三折, 漆書三滅)."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책(冊)이란 글자의 생긴 모양에서도 알 수 있듯, 죽간의 위쪽에 구멍을 내어 가죽끈으로 발을 엮듯 만든 것이 종이 발명 이전의 책 모양이었다. 죽간을 묶은 가죽끈이 너덜너덜해져서 세 번이나 끊어졌다. 이것이 삼절(三絶)이다. 또 대나무 구멍으로 가죽끈을 꿰려고 바늘을 쑤셔 넣다 보면 바늘 허리가 자꾸 부러진다. 이것은 삼절(三折)이다. 대나무 조각에 쓴 먹글씨는 손때가 묻어 세 번이나 지워졌다. 이것이 삼멸(三滅)이다. 요즘 식으로 말해 책을 하도 읽어 종이가 너덜너덜해지고 책장이 다 떨어져 나갔다는 말이다.
얼마나 '주역'에 푹 빠졌으면 '논어' 술이(述而) 편에서는 "하늘이 내게 몇 해만 더 허락해 '주역' 공부를 마치게 해준다면 큰 허물이 없게 될 수 있으련만(假我數年, 卒以學易, 可以無大過矣)"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퇴계 선생이 서울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구했다. 여름 내내 문 닫고 그 책만 읽었다. 주변에서 더위에 몸이 상하면 어쩌려고 그러시냐며 걱정하자, 대답이 이랬다. "이 책을 읽으면 가슴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일어나 더위를 절로 잊게 되네. 병이 날 리가 있는가?" 이를 베껴 쓴 사본(寫本) 한 질도 너덜너덜해서 글자의 획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 요긴한 대목만 가려 뽑아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따로 펴내기까지 했다.
손때 묻혀 읽다가 너덜너덜해진 책이 서가에 한두 권쯤 꽂혀 있어야 한다. 빨간색 표지의 '동양연표(東洋年表)'가 집에 한 권, 연구실 책상에 한 권, 탁자 위에 한 권 있다. 세 책 모두 18세기 언저리에만 손때가 새까맣게 묻었다. 오래된 한 권은 실이 풀어져 낱장이 자꾸 빠진다. 손때 묻은 부분을 볼 때마다 내가 18세기 전문 연구자라는 사실이 느껴져 기분이 좋다. 진(晉)나라 부현(傅玄)이 '잡시(雜詩)'에서 노래했다. "지사는 날 짧음을 애석해하고, 근심 많은 사람은 밤 긴 줄 아네(志士惜日短, 愁人知夜長)." 이룬 것 없이 세월만 빨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