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許筠·1569~1618)이 쓴 '관론(官論)'을 읽었다. 국가조직의 문제점을 꼬집은 내용이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관직을 멋대로 늘리면 권한이 분산되어 지위가 높아지지 않는다. 인원이 많을 경우 녹(祿)만 허비하면서 일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서 잘 다스려지는 이치는 결코 없다."
이어 불필요하게 자리 수를 늘린 결과 국가 예산을 잡아먹고 소관 다툼만 하게 만드는 불합리한 부서 배치의 예를 들었다. 종실(宗室)의 친인척 관리는 종인부(宗人府) 하나면 충분한데, 종실과 제군(諸君)에 관한 일을 맡은 종친부(宗親府), 공주와 옹주 및 부마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의빈부(儀賓府)를 각각 두고, 왕실의 족보와 종실의 잘못을 조사 규탄하는 종부시(宗簿寺)를 따로 운영했다.
음식을 전담하는 부서는 광록시(光祿寺) 하나로 너끈한데, 물자 조달을 맡은 내자시(內資寺)와 각 궁(宮)과 전(殿)에 올리는 음식 및 관리에게 상으로 내리는 술을 담당하는 내섬시(內贍寺)를 따로 두었다. 또 궁중의 잔치와 종실 및 재신의 음식 공급을 맡은 예빈시(禮賓寺), 쌀과 곡식, 장을 관장하는 사도시(司 寺), 어류와 육류, 소금, 연료를 관리하는 사재감(司宰監)과 주류를 조달하는 사온서(司醞署)가 더 있었다. 궐내에 음식 관련 부서만 6개였다.
직능이 분화될수록 비용이 늘어나고 업무는 비효율적이 되어 일 처리가 더뎌진다. 밥그릇 싸움에 부서 간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안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한다. 허균의 말이 이어진다.
"부서를 책임지는 관리를 하나하나 가려 뽑을 수 없다 보니 대부분 용렬하고 비루하여 재능 없는 자로 구차하게 채워진다. 이들은 실무 담당자만 쳐다보며 일하다가 갑자기 맡은 일에 대해 물어보면 망연하여 대답조차 하지 못한다. 이로 말미암아 자리 대접도 못 받는다. 나랏일이 날마다 문란해지고(就紊) 기강은 나날이 땅에 떨어진다(墜地)."
국리민복의 논리와 명분을 내세우지만 알고 보면 논공행상과 당리당략에 따른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400여 년 전 허균의 탄식이 바뀐 게 없다. 역사는 정말 발전하는 게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