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 선생의 노래 '낙화유수' 원곡을 여러 날 들었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엮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낙화유수 네 글자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 어여쁘던 꽃이 물 위로 진다. 물결 따라 흘러간 꽃잎은 어디로 갔나.
2절.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울어 춘삼월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 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3절. "사람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러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 소식을 편지로 쓰자." 가사가 가락에 얹혀 낭창낭창 넘어간다.
봄이 가고 꽃이 진다. 진 꽃잎은 물 위로 떨어져 세월에 실린 꿈처럼 흘러갔다. 갸륵하던 맹세는 지워지고 행복의 물새가 우는 포구는 어디인가? 종달새 울고 영춘화 피는 이 강산의 봄 소식은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친김에 낙화유수란 네 글자가 나오는 한시를 검색해 보았다. 효종이 쓴 '우연히 절구 두 수를 읊어 인평대군에게 주며 마음을 달래다(偶吟兩絶, 賜麟坪大君慰懷)'의 둘째 수다. "봄 가고 가을 오듯 한 해도 이우는데, 진 꽃잎 흘러간 물 돌아올 줄 모르네. 인간 세상 온갖 이치 모두가 이 같거늘, 어이 굳이 빈산에서 곡하며 슬퍼하리(春去秋來年光謝, 落花流水不曾廻. 人間萬理皆如此, 何必空山哭盡哀)." 봄 가더니 가을 오고, 어느새 세밑이다. 진 꽃잎은 물에 떠서 흘러가 버렸고, 사람도 한번 가면 오지 않는다. 담담하게 맞고 담백하게 보내리라. 임금은 가을 저녁 우중충한 날씨에 까닭 없이 심사가 허전해졌던 모양이다.
1594년 사행길을 떠나 중국 무령(撫寧) 땅을 지나던 최립(崔岦)이 쓴 시의 앞 네 구는 이렇다. "초가집 사면은 돌로 담을 쌓았 는데, 온 골짝 쓸쓸하다 황혼조차 일찍 오네. 오늘 길엔 잔설에 얼음이 떠다녀도, 지난해 마을에는 진 꽃잎이 떠갔었지(衡茅面面石爲垣, 一壑蕭然自早昏. 殘雪斷氷今日路, 落花流水去年村)." 꽃잎이 흘러가던 강물 위로 찬 얼음이 떠내려간다. 신산한 시절 심사가 낙화유수 네 글자에 묻어난다. 아웅다웅 또 한 해가 간다. 미세 먼지 탓에 시계(視界)가 자꾸 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