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물이 그들의 삶에서 때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듯이 그들의 종을 남기는 그 결정적인 순간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때라고 여길 것인데, 우리네는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놀랍다.
경황없이 살아가면서 때를 기다리고,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그렇다. 이 ‘때’라는 것이 다른 생물과 전혀 다르다. 거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 나다.
우리는 하루를 24시로 나누어서 그중에서 때를 가리고 또 그 가린 때에 다시 분초로 나누어서 또 때를 가린다. 그런 하루의 일과를 삼백육십 닷새 동안을 밤낮으로 놓치지 않고 제때를 가려 나간다. 그 ‘때’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멀게는 일생을 두고 짧게는 일 년을 두고, 때로는 달로, 필요한 때엔 초(秒)에다 초점을 맞추고 산다. 하지만 그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직 자기만 아는 때를 겨누어 살아간다.
가장 우선해야 하는 생물학적 본질은 언제나 밀린다. 즉, 자신의 인자를 후대에 불러주려는 일의 때를 가리고 고르는 데는 늘 후차적이고 다른 일에 밀린다. ‘때를 기다린다.’든지 ‘때를 만났다.’든지 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을 가리킬 뿐이다. 때가 유독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원에서의 때란 정지된 그것이라야 하련만, 우리는 우리의 한정된 삶 안에서 때를 찾는다.
부질없는 이때를 은연중 나도 기다렸고 그렇게 산다. 어쩌면 지금도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 오지 않았다고, 짐짓 기다린다. 그때란 내가 집을 떠나오면서 기다리던 그때인데, 아직은 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때가 말이다.
청춘의 무지개 꿈은 잡히지 않았고 그때는 벌써 지나가 버렸다. 차라리 미물이었던들 반듯한 일생을 살고 있을 것이련만 값을 잃고 사는 어설픈 내가 얄밉다. 그러나 이것이 나다.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서 나를 찾아야 한다. 이제부터 이 나를 찾는 일의 때가 올 것이고,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초조하다.
때를 기다리자! 그리고 나의 때가 어떤 것인지를 새삼 확인하자. 늦었지만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알아차린 것만이라도 그냥 미물로 남지 않았기를 바라고, 감사할 따름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