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샘

외통인생 2019. 8. 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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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물의 보급은 행정을 맡은 읍면을 통하여, 경찰의 치밀한 민심 파악의 도움을 얻으면서 펴졌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이는 기차를 통하여 신속히 보편 파급됐다. 그러나 전통 마을인 우리 동네는 여전히 주춧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새로 짓는 집을 바라보고 담담히 감상할 따름이다.

새로운 양식의 건축구조를 보이고, 새로운 색깔의 지붕도 길가에 얼굴을 드러낸다. 비록 전모는 아니나 일부는 전통적인 우리의 건물을 뜯어서 분칠하는 곳도 있다. 일본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몸짓을 보여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소위 문화인임을 자처하며 등용되려는 속셈을 드러내 보인다.

이렇게 해서 개명의 물결에 앞장섰고 그들의 뜻이 집치장을 통하여 밖으로 드러났다. 이런 개량 집과 전통 초가집 모양은 또렷이, 新舊(신구)가 금 그어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 우리 동네다.

전통 한옥의 처마를 달아내어 마루 창을 달고 손바닥만 한 유리 조각을 끼워서 비와 바람을 막는 소위 아마도(잔지문:あまど:雨戶)를 만들어 달아야만 그들과 대화 할 수 있고 초청할 수 있는, 지위를 얻는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인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집은 거의 이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단순히 영농과는 거리를 둔, 그런 생활에서 연유된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네의 가옥구조가 농사일과 주거 공간을 한꺼번에 한 지붕 밑에 마련하고자 하는 소박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좀 더 위생적인 주거 공간을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어린 내게도 이런 집들을 보면 금방 이 집은 끈을 대고 사는 집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됐을 정도다. 우리의 정서와 조금은 떨어져 있는,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느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신은 유리 창문 밖 툇돌 위에 벗어놓고 들어가는 불편함도 있지만, 도무지 빈틈이 없어서 숨이 막힐 것 같다.

안은 먼지 하나 떨어지면 그 자리가 표나고 옷에 묻은 흙먼지를 받아들일 흡입 장치가 없는 집이다. 그나마 우리 가옥구조의 피를 이었다면, 온돌에 장판을 깐 탓에 다다미방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위안이다.

어느 날, 반 친구 ‘경방 단장’ 아들은 우리를 몰고 자기 집에 끌어들였다. 그의 부모가 모임에 가셨거나 따로 볼일을 보시려고 외출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예의 아마도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다란 마루를 온통 유리문으로 막아 복도 모양으로 마루를 만들어 놓은 곳에 들어서게 됐고, 다시 큰 미닫이문을 열어 두 칸짜리 통짜 방에 모두 몰려 들어갔다.

우리의 놀이는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날 초청자 ‘경방 단장’ 아들은 양양했다. 작은 책상 위엔 새까만 수동식 전화기가 놓여있고 전화기에선 높은 옥타브의 벨 소리가 울렸다. 아들은 우리를 향해서 하소연하듯이 내몰았고 우리는 각기 이런 집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몰려나왔다.

누구나 같은 심경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조금도 아쉬움 없이 물러났다. 그것은 내가 있을 만한 포근한 자리가 아니라 내가 이 자리에 어떤 해를 끼칠까를 먼저 생각하게 해서, 불안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한, 유리 상자 안 같은, 그런 집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우리 면에서 유지 축에 끼는 젊은 분이셨다.



신문물 중에는 자전거도 있다. 자전거를 타는 이는 신식 사람이요 자전거를 못 타는 이는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여겨도 될 만했다. 이즈음 골프를 못 치는 이와 버금갔으리라. 나는 극성맞은 성격 탓에 구장 집 조카를 꾀어서 구장 집의 자전거를 그 집 조카와 몰고 기찻길 건널목 언덕에서 몇 번을 오르내리면서 배우긴 했다. 우리 집의 형편으로는 두발자전거는커녕 세발자전거조차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정거장에서 언덕을 조금 내려오면 철도관사가 있다. 여기서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 하늘의 동풍을 타고 들리는 소리다. 닭 우는 소리, 소 우는 소리, 워낭소리, 개 짖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 다듬이질 소리, 애 부르는 소리, 이런 소리에 섞여서 삐삐 쇠붙이 마찰 소리가 짤막짤막하게 들렸는데 이것이 세발자전거 타는 소리임을 한참 뒤에 단장의 아들인 내 친구의 구설수를 기화로 해서 알게 됐다.

단장의 아들, 내 친구는 잘생겼다. 잘 먹어서 그런지, 타고나서 그런지, 아무튼 발군 용모를 갖춘 미남이었다. 그가 우리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된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역장 딸의 세발자전거를 밀어주었다는 친구들 구설수다. 논 뜰을 건너서 한참을 가야 하는 정거장까지 가서 ‘자전거를 밀어’ 주었다는 것이 입에 오르내리는 입방앗거리다. 남녀가 따로따로 놀던 우리의 학교 놀이에서조차 그 시절에 걸맞지 않은 풍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아무것도 아닌데도 한동안 곤혹 치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남의 일을 빌려서 내 꿈을 아름답게 만들어 보려는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눈을 감는다. 그 단장의 아들 내 친구는 이 일체 일을 잊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삼사 학년 때의 일이니까!

동구 밖에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정거장으로 가는 지름길을 자주 다닌 내가 그때마다 들려왔던 삐걱삐걱 소리가 단장의 아들, 내 친구가 역장 딸의 세발자전거를 밀어주는 소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이제 슬그머니 부화가 오른다. 역장의 집은 관사여서 유리문이 겹쳐 있는 겹집이었다.

개량된 집에 유리문을 달고 나서 생각해 볼 일인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의 아름다운 시샘이다.

세발자전거는 소리가 나야 세발자전거 같다. 요사이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면 나 같은 둔자(鈍者)는 어떻게 무지개를 타고 소리 없는 자전거를 찾아갈 것인가. 유리문은 어느 집이나 달았을 테니 더욱 그렇다.

세발자전거 삐걱 소리를 듣고 싶다.
눈을 떴다./외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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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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