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내

외통인생 2019. 8. 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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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내

1171.010112 소나무와 내

우리 동네는 위쪽 끝에 있는 푸른 솔밭과 제방 둑 넘어 흐르는 냇물과 마을 복판에 난 한길 양쪽에 밤낮으로 흐르는 도랑물길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인근에 널리 알려진 이름난 동네다.

친구의 성이 소나무와 냇가를 어울리게 하여 지은 창씨인지는 몰라도 그 가족이 자리한 집터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소나무와 내, 송천(松川;마쓰가와)이 특별해서 생각난다. 행동이 유별하여 잊지 못하는 그 친구다. 그는 늘 같은 옷을 입었으나 운동장은 늘 종횡으로 누비는,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보다 두 살 위인 그의 형은 언행이 튀어서 우리 친구들이 흉내 내리만치 놀이에 열중하고 신명이 많았다. 그러나 통하는 것이 없으니 그냥 바라다볼 뿐이었다.

그 친구의 밝은 생활에 비추어 집안 사정은 아직 어려운 편이었나 보다. 점심을 때우는지 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학교 앞이니 집에 가서 먹을 터이지만 그는 늘 점심시간의 텅 빈 운동장을 혼자 공차기로 메우고 있었다.

해방을 맞아 경황없이 지내며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이 소식도 없어졌다. 자고 나면 뉘 집은 이남으로 갔고 뉘 집은 어디로 갔다, 는 소리는 거의 다 월남했음을 내가 이쪽에 와서야 알게 됐다. 그때는 그 집도 그렇게 떠나간 것으로 알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고향에서 해방을 맞고 채 이태가 되지 않은 때의 어느 날이다. 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이 운동장이 비좁다는 듯이 홀로 서서, 그것도 오랫동안 버티고 서서 교사를 응시하는가 싶더니 하늘을 보고 땅을 보다가는 조금조금 왼쪽으로 돌면서 뒷산과 마을과 사택을 번갈아서 자세히 살핀다. 내가 머물 이유가 없어서 지나쳤으나 그가 어디에서 온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운동장에 서 있었는지를 모른 채 지나갔다. 훗날 들었는데, 그는 친구의 형으로 일찍이 인민군에 들어가서 장교가 되어 고향에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동생 내 친구도 그쪽으로 발을 들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지나간 활동사진의 얽히고 끈긴 필름의 한 가닥을 쥐고 들여다보며 이 앞은, 이 뒤는, 만져보고 훑어봐도 신통치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서건 출세를 위해서건 이제 그런 것을 따져서 무엇 하겠는가? 운동장 한복판에 버티고 섰던 그가 그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이제 그들과 영 다른 세상에서 幻影(환영)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언제 그 운동장에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자세로 서게 될지 아득하기만 하다. 꿈을 깨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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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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