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라고는 해도 멀리 떨어져 나온 것 같다.
좀처럼 나들이 못 하는 바쁜 삶을 살다가 오늘 아내의 막무가내로 분에 넘치는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세상 모든 일은 늘 혼자 도맡아 하는 것처럼 부산하기만 한 나를 지켜만 보고 있던 아내는 못내 나를 제쳐놓고 조용히 모든 일을 밀어붙였고, 까맣게 모르던 내가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땐 모든 게 완벽하게 짜인 뒤였기에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지못한 나들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나뭇잎 냄새가 상큼하다. 우거진 녹음 사이를 뚫은 햇볕이 이마에 닿을 때마다 벌에 쏘인 듯 따갑다. 물을 찾아 나선 많은 가족이 계곡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바위틈을 굴러 흐르는 물소리가 어울려서 칠월의 무성함을 소리로 들려준다. 오랜만에 자연을 들이키는 기쁨을 맛본다. 불현듯, 고향의 산야가 눈에 든다.
푸른 숲으로 덮인 산허리가 잘린 듯이 평야에 내리꽂혀 늘 나뭇잎 냄새를 풍겨 내 콧구멍을 뚫어 머리를 식히고, 그런가 하면 눈이 모자라도록 넓은 들이 가지런히 펼쳐 하늘과 맞닿아 내 가슴을 부풀리며 미래를 품게 하고, 제자리에서 고개를 돌려보면 오른편에 푸른 동해(東海)가 뭉게구름을 피우며 어느새 샛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를 맡게 하여 딴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그런 곳, 그런 절경의 그 자리에서 맡던 그 나뭇잎 냄새가 지금 내 코에 고스란히 들어오고 있다. 동떨어진 서울인 곳에서나마 하루를 고향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켜고 싶다.
여기까지 오도록 주선한 아내가 대견스럽다. 더군다나 잠시 어려움을 겪는 조카들에게까지 마음을 쓴, 그 짓이 곱다. 아름답다.
갑자기 주말을 챙기면서 서둘기 시작했으니, 놀이도 때와 장소가 맞아야 하는지. 땅이 흔들려도 움직일 수 없도록 그날에 커다란 말뚝을 박고서 점검하고 있었다. 지루한 한여름 나기에 지친 조카들에게 신바람을 넣어서 그들이 가슴에 작은 보람을 담아주려는,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열정이었을 것이다.
서울의 북쪽 끝 ‘미아리’에서 도심을 지나 ‘부천’까지 택시로 우리 네 식구가 가고, 거기서 또 다른 택시 하나를 더 불러서 세 조카 애들을 태우고 ‘안양' 유원지까지 오는데 한나절이 걸리는, 대 이동을 처음으로 겪었다. 온갖 잡동사니 보따리 싸서 들고 다니지만 그래도 힘겨운 줄 모르고 날뛰는 아내의 정성이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이것이 아내의 마음이다. 누구나 다 있는 형제가 어찌해서 나만 없느냐는, 그럴 수 있느냐는, 무언의 항변, 행동으로 보이는 것 같다. 아내는 스스로 친형제를 만들고 홀로 친조카를 만드는 것이다. 눈물겨운 내 환경, 어쩔 수 없는 내 고립을 자기의 끈으로 이어 묶어보려는 갸륵한 심산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그대로 밝혀 말할 수가 없다. 말의 실마리를 꺼내면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은 두려움도 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싫은 것이다.
철들은 큰조카는 마냥 우울하다. 모든 행동이 한 호흡식 뒤처져서 움직이지만 그런 행동을 알아차리는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신이 나서 잠시도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두 몫을 하려는 아내의 심사도 역시 나밖에 알 사람이 없다.
조카들의 물놀이가 내가 저들 나이 때의 물놀이와 견주어지면서, 또 한 번 세대의 차이를 느낀다.
논두렁 밭두렁에서 온갖 푸성귀와 갖가지 벌레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것들과 교감하며 놀았던 나와는 전혀 다르다. 이제 엄격한 통제로 주어진 장소에 한정해서 노니는 조카들과 우리 애들을 비교하면서, 호화와 즐거움은 다른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을 정립하게 했다. 호화는 외적인 가세(加勢)에서 외적으로 호사스러울 뿐 정작 즐거워야 할 어린것들은 그저 이끌려 왔을 뿐 흥미 없는 매 순간을 보내려니 얼마나 지겨울까, 싶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내가 두 경우를 막 닥뜨려서 뚫어 보는 것이기에 생각할 따름이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란다면 그 또한 한껏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될성부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나다. 아버지 대에서 이루는 성가(成家)의 그늘에서 홀로 서는 자립의 기틀이 어떤 것인가를 보아온 내가, 그 시절의 놀이 방법에 무한한 향수를 갖는 것은 어쩌면 마땅하리라.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린 시절과 유년 시절을 보낸 듯싶은 내가 반지르르하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놀이 방법에 손을 휘젓고 있음은 당연하다. 어린것들이 어딘가 몸에 맞지 않는 허울을 쓴 것 같아서 민망스럽다. 그러나 어찌할 수가 없다. 오늘의 세태가 그렇고 그 속에 사는 모두의 생각이 그런 것을.
오직 나만을 제치고./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