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네거리

외통인생 2019. 8. 3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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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네거리

1539.001218 종로네거리 엿장수

해방의 참 뜻을 미처 모르고 어영부영 한 달이 지났다
. 글이야 한글을 배운다고 해도 우선은 애들을 통솔해야 하는 구령을 만들지도 못하여 각 학교 나름의 임의 조치가 불가피했다. 따라서 학교마다, 선생마다 발상이 백출했다.


우선 우리들의 학교생활의 시작이
안녕’(오하요)’(하이)가 어색하고 입 붙어서 소리 나지 않았다.


구령만 해도
차려 의 순우리말은 몇 달이 지나고서야 불리었고 그때까진 기착!’(氣着: 교쓰께;차렷)이였으니, 그야말로 기가 차는 노릇이다. 일거수일투족이 구령에 의해서만 집단이 통솔되는 특질을 감안 할 때 비로써 알 수 있듯이 학교생활에 일대 혼란이 일고 있었다. 아무 대책이 없으니 얘들아 저리 가거라.’ ‘이리 오너라.’ 식으로 됐고 집단체조나 노래는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 갈가마귀 떼 모양으로 앞서가는 애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고 손짓으로 몰아가는 선생님의 수고 또한 측은하다. 우리들은 공중에 던져진 풍선같이 바람 부는 대로 떠다니는 형편이 됐고, 망하는 것이 무엇이고 새로 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우리네가 이 기막힌 민족의 설움인들 알기나 했겠는가!


주도하든 일본인 선생님들은 종적을 감추고 조선인 선생만 남아서 이 반 저 반 징검다리 가르침에 애들은 무성한 상사
(想思) 의 급류를 타고 공산주의 나라로 자유(자본) 주의 나라로 자맥질 해 떠내려간다.


아직은 우리 동요나 가곡은 보급되지 않았고 재빠른 선생님은 일본 동요 곡에다가 우리말가사를 지어 붙여서 가르치기도 했다
. 음치여서 노래를 늘 경원하던 나였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단 한 가지 노래, 그 선생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은 노래, 지극히 단조롭고 짤막한 토막노래가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서울을 동경해서였을까
? 아니면 노래의 멜로디가 너무나 엉킨, 엉터리 노래여서 그럴까? 이제까지 우리의 정서와 동떨어진 노래만 부르다가 우리와 친근한 지명과 우리의 생활과 이웃에서 찾을 수 있는 모습을 그려서일까? 아무튼 곡도 가사도 또렷이 생각나는 이 토막노래가 오르간 반주도 없이 가르치는 선생님얼굴과 교차하며 선명히 떠오른다.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어
/ 엿장수늙은이가 있어 가위질 하네/ 천천히 걸어가며 엿을 팔아요./ 석양에 한량(限量) 없이 가며 엿을 팔아요.’



요게 모두다.
 

석양의 종 거리를 지극히 간명하게 표징 하는 해방 후의 첫 노래였을 것이다
. 검증되지도 않았고 악보도 없으니 노래 책에 실리지도 않은 이 가사와 곡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요행을 바란다면 그 때의 다른 친구들이 아직 고향을 지키면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을 것을 바랄 뿐이다.


얼굴이 넓적하고 자그마한 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이 선생님은 서울에서 공부를 했나보다
.


촌뜨기시골소년 내게
종로 거리란 이름을 알려줌으로서 동경하던 서울의 풍경을 그리게 한, 그 선생님의 생사는 어찌 됐을까! 격동의 광복혼란기를 슬기롭게 엮어간 스승의 안위가 뒤늦게 궁금하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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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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