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5.001204 친구 철봉 왕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내 기억력을 탓할까 , 아니면 깜박 사이에 흘러간 세월이 이름도 함께 채 간 탓일까 ! 이럴 때 그 이름도 , 그때의 여러 가지 일들도 남김없이 생각하고 되새길 수 있다면 내 생활에 생기가 더해질 것 같은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가 스스로 야속하다 . 아무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서 세월을 이겨 보려고 내 기억을 더듬는 데도 이것마저 안 되니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나보다 . 남이 내 뜻을 헤아려서 해 주는 것은 더더욱 없으니 , 누구의 탓이든 간에 아쉽기만 하고 안타깝기만 한 것이 기억이라는 이상한 실체다 . 기억할 것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윤택하고 보람찰 것이다 .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만 있음으로써 순간을 어떻게 기쁨으로 채우느냐 하는 것만 있고 나머지는 없기 때문이다 . 지나간 것을 기억할 수 없으니 등기부에 아무리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해도 내 것이 아니요 새로운 것 일 테니 모두가 앞으로 있을 , 내가 해야 할 취득 대상일 따름이다 . 흔히 있는 기억 상실증이나 건망증 등은 인간의 본래모습으로 돌아가는 단계인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가 사는 동안의 숱한 기억의 대상과 기억한 사물은 마치 영화 속에서 보는 대상물과 다를 바 없으니 이 영화 속의 대상물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써 사물의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내 것을 잃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면 보다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 이런 점으로 해서 나는 지금 내 재산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 헌데 한 학년이면서도 기억 못하는 , 우리 반 씨름꾼이요 철봉 왕인 아무개를 떠올리면서 그가 남긴 자산을 소유하려고 하는 내 욕심을 탓하기는 하겠지만 될 수 있는 한은 좋은 기억을 많이 해서 이것이 내 자산으로 오래 오래 남기를 바랄 뿐이기에 , 애써서 되새겨 보려한다 . 귀가 어두운 그는 무슨 얘기든지 정면에서 해야지 옆이나 뒤에서 하면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자기의 탓으로 여기기전에 자기를 흉보거나 욕하는 줄 알고 화를 내니 그 화는 아무도 당해내지 못한다 . 그때마다 일이 크게 벌어지고 학교가 들썩거린다 . 그래서 그와 대화 할 때는 늘 웃는 얼굴을 짓고 해야지 그 밖의 설명을 하려고 한다면 일이 점점 복잡해진다 . 그래서 그와는 아무도 놀려고 하지 않으니까 홀로 철봉이나 달리기 넓이 뛰기 등을 하게 되므로 그의 체력은 일취월장하여 우리 또래의 적수가 되지 않는 장대한 청년의 체위를 갖고 있었다 .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를 한해 늦게 들어오긴 했어도 다른 애들의 같은 나이로 볼 때도 월등하다 . 그가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그의 공책을 볼 수도 없었으니 모르지만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하드래도 한계는 있었을 것이다 . 하지만 이 공부를 제외한 행동의 발달은 어느 누구보다 앞서 있었기에 운동 때나 소위 근로봉사라는 이름의 작업 때나 그가 속한 쪽에 가면 반드시 우승을 하고 이긴다 . 그는 만능의 체육 선수였다 . 그 후에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보고 싶은 친구이다 . 특수학교도 아니요 일반학생들 틈에 끼여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육년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들의 지극한 정성이 있어서였지만 우리 모두의 작은 배려가 어울린 한 열매였다 . 이제 작은 티끌을 주었다 . 이는 이 세상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나만의 내 재산이다 ./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