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내 기억력을 탓할까, 아니면 깜박 사이에 흘러간 세월이 이름도 함께 채 간 탓일까! 이럴 때 그 이름도, 그때의 여러 가지 일들도 남김없이 생각하고 되새길 수 있다면 내 생활에 생기가 더해질 것 같은데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 내가 야속하다.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서 세월을 이겨 보려고 내 기억을 더듬는 데도 이것마저 안 되니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도 없나 보다. 남이 내 뜻을 헤아려서 해 주는 것은 더더욱 없으니, 누구의 탓이든 간에 아쉽기만 하고 안타깝기만 한 것이 기억이라는 이상한 실체다.
기억할 것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윤택하고 보람찰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만 있음으로써 순간을 어떻게 기쁨으로 채우느냐 하는 것만 있고 나머지는 없기 때문이다. 지나간 것을 기억할 수 없으니, 등기부에 아무리 정확하게 기재돼 있다, 해도 내 것이 아니요 새로운 것일 테니 모두가 앞으로 있을, 내가 해야 할 취득 대상일 따름이다. 흔히 있는 기억 상실증이나 건망증 등은 인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단계인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가 사는 동안의 숱한 기억의 대상과 기억한 사물은 마치 영화 속에서 보는 대상물과 다를 바 없으니 이 영화 속의 대상물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써 사물의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내 것을 잃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면 더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점으로 해서 나는 지금 내 재산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는 것이다.
한데, 한 학년이면서도 기억 못 하는, 우리 반 씨름꾼이요 철봉 왕인 아무개를 떠올리면서 그가 남긴 자산을 소유하려고 하는 내 욕심을 탓하기는 하겠지만 될 수 있는 한은 좋은 기억을 많이 해서 이것이 내 자산으로 오래오래 남기를 바랄 뿐이기에, 애써서 되새겨 보려 한다.
귀가 어두운 그는 무슨 얘기든지 정면에서 해야지 옆이나 뒤에서 하면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자기의 탓으로 여기기 전에 자기를 흉보거나 욕하는 줄 알고 화를 내니 그 화는 아무도 당해내지 못한다. 그때마다 일이 크게 벌어지고 학교가 들썩거린다. 그래서 그와 대화 할 때는 늘 웃는 얼굴을 짓고 해야지 그 밖의 설명을 하려고 한다면 일이 점점 복잡해진다. 그래서 그와는 아무도 놀려고 하지 않으니까 홀로 철봉이나 달리기 멀리뛰기 등을 하게 되므로 그의 체력은 일취월장하여 우리 또래의 적수가 되지 않는 장대한 청년의 체위를 갖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를 한해 늦게 들어오긴 했어도 다른 애들의 같은 나이로 볼 때도 월등하다. 그가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그의 공책을 볼 수도 없었으니 모르지만 아무리 재주 좋다 하드래도 한계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부를 제외한 행동의 발달은 누구보다 앞서 있었기에 운동 때나 소위 근로봉사라는 이름의 작업에는 그가 속한 쪽에 가면 반드시 우승하고 이긴다. 그는 만능의 체육 선수였다.
그 후에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보고 싶은 친구이다. 특수학교도 아니니 일반학생들 틈에 끼여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육 년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들의 지극한 정성이 있어서였지만 우리 모두의 작은 배려가 어울린 한 열매였다.
이제 작은 티끌을 주었다. 이는 이 세상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나만의 내 재산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