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외통인생 2019. 9. 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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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010321 친구들-

일 학년 사 반에서 생각나는 친구, 기억되는 친구는 많지 않다. 반에서는 늘 ‘고저’ 읍 애들이나 ‘통천’ 읍 애들이 판쳤고 우리 ‘면’에서는 나 홀로 외톨이로 있으니 외롭게 끼여서 공부하는 꼴이 됐다. 그러나 열심히 한 덕으로 그래도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지금 기억되는 친구는 여전히 남쪽에서, 그나마 목소리라도 듣고 몇 년에 한 번씩 우연하지 않게 만나는 친구다. 모르든 성정도 알게 되고 새롭게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때를 회상하여서 우의도 돈독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워낙 각자의 생활이 바쁘다 보니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테고, 그런 가운데 피차가 만나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래서 아직 서울에 있다는 ‘이윤관’ 친구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는 다리가 약간 불편한 몸으로 우리 반에서는 누구보다도 특별하게 기억될 수밖에 없다.

또 한 친구. 얼굴이 백지장같이 희어서 내 기억에 남는 이 친구는 이미 이승을 떠난 사람이다. ‘진동협’, 그의 장례식 때 울산에 내려간 적이 있는데 그는 자기 생명을 이웃을 위해서 헌신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자기 몸을 어느 대학병원에 기증했다. 몸을 기증한 상태로 나에게 자랑까지 한 특별한 친구였다. 그는 자기 할 일도 다 하지 못하고 부인에게 짐을 떠넘겼다. 그는 과거 한때 나와 같은 과정을 겪었던 것도 뒤늦게 알았다. 즉 ‘징병’당하고 배속될 때까지 나와 같이 움직였다. 그는 전투도 했단다. 그것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누구나 그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서 추호도 그를 이상히 여기질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의 행적에 대해서도 아무런 여과나 분식 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나를 평가받고 그 범위 내에서 떳떳이 살고 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과거를 숨기고 현재의 세도를 탐닉하고 안주하면서 과거의 행적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것과 대조된다.

나는 그런 사람의 꼴을 자주 보고 냄새도 맡고 있다. 그 냄새는 구리도 고약하다.

학교생활, 그 무렵 나는 다른 애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아마 산골에서 소먹이다가 잘못된 길로 빠진 머슴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원숭이처럼 비친 친구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지금껏 오가는 ‘유승일’이다. 그래서 또렷이 기억하고 더욱 친밀한가 보다.

그도 나와 같이 긴 영어(囹圄)의 생활을 했고 일찍이 손이 닿아서 이곳에서 학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돌이킬 수 없는 숙명이다.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우리 반에 기계체조를 썩 잘하는 애가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그가 손에다가 붕대를 감고 철봉에 매달려서 ‘대차’라는 것, 몸이 일직선을 이루어서 철봉을 축으로 몇 바퀴씩 도는 고난도의 철봉을 서슴없이 했고 평행봉도 자유로이 구사하는 만능 체육 선수였다. 그의 가슴은 터질 듯이 튀어나와 있고 어깨는 벌어져서 상체가 삼각형을 이루는 전형적 체조선수였다.

사진도 동창회도 없는 과거. 이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회포를 풀 날을 맞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서글프기도 하다. 짧은 학창 생활에서 그나마 과거를 새김질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조차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이제 어두움이 발밑에 오니, 고향길, 마음이 조급하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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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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