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44.130923 참회(懺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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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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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보면
무언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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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들이 먼 고장으로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올 때의 장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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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산을 챙겨 나갈 때만 해도
그는 분명 화려한 옷차림에 말끔한 용모였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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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그렇지 않았음이 확실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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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누더기였을 것이고,
신발도 없었을 것이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였을 것이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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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게 아버지는
여느 거지나 다름없는
작은아들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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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가까이서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알아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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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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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둔 부모라면 누구나
이 대목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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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을 떠난 뒤부터
줄곧 그 아들을 걱정하였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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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기는 하는지,
거지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강도를 만나지는 않았는지,
죽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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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돌아오려나?’
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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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거지 차림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먼 데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던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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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죄를 지으며
주님을 등져 버렸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지니고 계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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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신 곁을 떠나
영혼이
파괴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시며 마음 아파하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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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돌아오려나?’
하시며 늘 기다리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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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자비로우신 아버지,
우리 주님의 마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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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참회(懺悔)하고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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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