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창문이 열려 있었다.
커튼이 흔들리고 있다.
그 틈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금이 간 안경알이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 침대가 있다.
그 옆으로 흘러내린 촛농으로
덮인 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벽에 걸린 몇 년 전의 달력이,
마룻바닥 위 여행 가방이 입을 벌리고
옷가지들을 쏟아낸 채 잠들어 있었다.
천장에는 얼룩덜룩한 곰팡이가
꿈의 무늬를 그려놓고 있었다.
방문 앞에 흙 묻은
신발이 뒤집혀 있었다.
침대 속에서
누군가 울고 있었다.
센서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다시 켜진다. /강성은
한 사람이 오랜 외출에서 돌아왔다. 무엇을 찾아 떠났던 여행이었을까? 방랑이라고 해도 되고 탐색이라고 해도 된다. 근본적으로는 이승에 온 의미를 찾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한옆에서 '빛나고' 있는 '금이 간 안경알'은 치열하게 찾아 헤맨 자의 흔적이다. 몇 년 전의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달력 아래에 잠든, 몇 년 동안 그만큼 낡아진 여행 가방은 이 사람의 초상이라고 해도 되리라. 서글픈 것은 이 사람의 꿈의 무늬가 얼룩덜룩한 곰팡이의 무늬라는 사실이다. 아직 '흙 묻은 신발'이 찾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그는 오랜만의 휴식에서도 울고 있다. 그를 찾아온 이 누구인가? 센서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도록 입구에서 들여다보는 이 누구인가? 그 또한 '나'다. 비로소 저만치 '나'를 보기 시작한 나!
'있다,'와 '있었다.'의 중첩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나누는 '나'와 나의 대화가 이상하기는커녕 아름답기만 하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