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19.130828 하느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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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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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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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세상이 주는 거짓 평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주시려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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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좀 더 풀이하면 다음과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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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예수님의 평화는
‘불’을 통하여 실현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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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성경』에서 심판을 뜻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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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세상에
불이 훨훨 타오르기를 바라시는 것은
세상 안에 있는
온갖 죄악을 태우고자 하시는 마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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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하여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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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루카 복음사가의 경우에는
불이 성령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루카 3,16; 사도 2,3.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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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상에 불이 타오른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의 온갖 불의와 부패를
없애 버리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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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예수님의 평화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실현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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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란 옛 삶이 죽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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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란 십자가상의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구원을 가리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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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구원 사업이
이 세상에 참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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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평화는 분열을 통하여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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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디 혈연과 학연,
지연 등 수많은 관계의 사슬에 얽매여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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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다양한 관계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관계는
바로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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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는 마치
태아가 탯줄 없이는
생명이 끝나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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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분열을 일으키시겠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관계 가운데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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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질서가 잡혀야
인간 본연의 평화가 오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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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주는 평화에 익숙하면 익숙한 만큼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얻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를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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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누리려면
무엇을
결단해야 하겠는지 묵상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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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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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