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지하 창밖에는
햇살은 들다 말고
바람도 스쳐가는
중곡동 헐한 월세 반 지하 창밖에는
귀 열린 상추 댓 포기
옹알이가 한창이다
웃음보 자지러진
외손자 걸음마에
장맛비로 반 토막 나 울상이 된 품삯도
해거름 탁배기 잔에
다소곳이 졸고 있다 /정용국
장마가 길어 채소가 금값이다. 비에 여린 상추는 유독 껑충 뛰었다. 하지만 이 지루하고 꿉꿉한 장마 속에도 어느 창밖에서는 상추가 곱게 자라고 있다. 한 뼘 땅만 있어도 고추며 상추를 가꾸는 손이 도심 곳곳에 피우는 남새꽃이다. 흙의 힘을 믿는 마음들을 보며 덩달아 뿌듯해진다. 긴 비에 상할라, 정성껏 돌본 티를 내는 손바닥 남새밭은 그래서 다 꽃밭이다. 누군가를 먹이려고 바지런히 오간 손길과 발길이 만드는 윤기에 지나는 마음마저 흐뭇하다.
게다가 '웃음보 자지러진 외손자 걸음마'가 있다면, '반 토막 품삯'쯤 문제가 아니다. 상추 '옹알이'도 한창이겠다, 반 지하 셋방이면 어떠랴. 창밖에 어리는 훈기로 골목들이 안온해진다. 그러니 '해거름 탁배기' 한잔이 얼마나 꿀맛이겠는가! 가끔씩 탁배기로 시름을 덜다 보면 눅눅한 장마에도 웃음꽃이 피리라./ 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