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혀 2
꿈을 꿨다,
풀 한 짐 지고 우두커니 서 있는
고요해서 슬펐다
풀 한 짐이 시들었다
천리 길 만 리 떠나는
워낭소리 들렸다
핏물 밴 풀 뜯어먹다
배가 고파 울었다
붉은 흙을 뒤집어쓴
어미소가 걸어왔다
다 헐은 혓바닥으로
연신 핥아 주었다. /이태순
장마철에는 풀이 유독 잘 자란다. 가는 곳마다 무성한 풀이 에워싸게 마련이다. 그럴 즈음 산만 한 풀 짐을 지고 문간으로 들어서던 젖은 맥고자가 떠오른다. 그중 좋은 풀을 먹이려고 빗속도 마다 않던 농촌의 아버지들. 소 역시 그 마음을 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달게 풀을 먹고 새끼를 돌보곤 했다. 사료 아닌 풀을 먹이던 시절 얘기다.
'풀 한 짐 지고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에 이 땅의 아버지들이 겹친다. 짐을 내려놓을 수 없는 평생이었다. 고요해서 슬픈데 풀짐은 시들고,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 멀리 떠나는 워낭 소리가 더 애틋하게 울린다. 소를 팔러 가기라도 하는 걸까. 아무려나 워낭 소리는 늘 가슴을 파고든다. 그런데 어디선가 어미 소가 오고, 고픔과 슬픔을 핥아준다. 그것도 '다 헐은 혓바닥으로 연신'…. 목에 차오르는 것들이 빗발 속에서 하염없이 아득해진다. /정수자·시조시인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