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간다.
우주의 넓이가 문득,
궁금했던 모양이다.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다 돌아온다.
그런데, 왜 돌아오나
아마 다시 재나 보다 /이종문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모습을 본다. 다른 곳도 아닌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호연지기(浩然之氣)'에서 따왔을 호연정에서조차 꼭 몸만큼만 재며 나아가는 꼼꼼쟁이 자벌레. 호연지기와는 거리가 먼 묘한 대조다. 하지만 몸을 말았다 펴는 고만큼씩만 전진하는 모습은 똑 구도자의 오체투지다.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똑같은 자세로 나아가는 수도자의 일생이 아닌가.
그런데 그 자벌레가 봄날 호연정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신다. 아니 건너다가 다시 돌아오신다. '아마 다시 재나 보다'. 죽비를 딱 내려치는 한 줄의 맛. 다시 재려고 돌아오다니! 시쳇말로 빵 터뜨려주는 일품이다. 웃음 속에 눙쳐 넣은 깨달음 같은 한 방으로 불이라도 켠 듯 봄이 더 환해진다. 호연정 대청마루에 시원하게 눕고 싶은, 봄날도 참 환한 봄날이다. /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