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78,130402 죽음과 부활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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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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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부활,
섬기는 것과 섬김을 받는 것이
대조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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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죽음과 부활의 대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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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던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환영하는 잔치가 벌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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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의 중심은 거기에 있지 않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닦아 드리는 장면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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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를 붓고 닦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분의
‘장례’를 위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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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라자로를 살리신 직후
최고 의회에서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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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를 살리신 것이 오히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게 된 계기가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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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고 하신 당신의 말씀대로
지상에서의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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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조는
섬기는 것과 섬김을 받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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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에는
다른 이의 발을 씻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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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시는 장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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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가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리는 내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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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가 되자
손수 제자들의 발을 손으로 씻어 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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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린 이는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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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감하고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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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처럼
예수님을 극진하게 섬기는 모습은
요한복음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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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에
참으로 깊이 동참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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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리아처럼,
‘친구’를 살리시고자 죽음을 각오하신
예수님을
온전히 섬기며
그분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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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