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77,130401 하느님의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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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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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조롱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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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도 있는데
왜 너무도 무력하게
수난과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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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를 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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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한 살인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고 직전에 있는 이 사람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검사입니다.
그는 살인자의 잘못한 점만을 바라봅니다.
두 번째는 변호사입니다.
검사와 대조적으로 살인자의 좋은 면을 부각시킵니다.
그러나 변호사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의 직업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판사입니다.
그는 법의 기준이기는 하지만,
사람 자체를 판단하며 그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청중입니다.
이들의 시선은 제삼자 그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닙니다.
그저 호기심과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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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살인자를 둘러싼 시선 가운데
어떤 시선을 지니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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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검사, 변호사, 판사, 청중과는 다른
시선을 지니고 계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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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시선은
마치
살인자의 어머니가 지닌 마음과도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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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식의 잘못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따질 틈도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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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당장 자기 자식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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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죽게 된다면,
차라리 자신이 대신 죽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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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유가 여기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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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의
죽음을 바라시지 않고
오히려 살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아무 죄도 없으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묵묵히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신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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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죄를 기워 갚으시려
스스로 속죄양이 되어 희생되신
예수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려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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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