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그분(하느님)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 . . 어째서 예수님께서만 하느님을 아시고 유다인들은 모른다는 것인지, 다음의 두 가지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답니다. . . .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영원으로부터 나신 분이시지만, 유다인들은 그렇지 않답니다. .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시지만, 그들은 모릅답니다. . 우리는 ‘내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지만, 하루살이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랍니다. . . . 두 번째는 태도의 차이랍니다. . 성경의 요한 1서에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4,7-8). .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과 연관이 있답니다. . 곧 사랑할 때에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 수 없답니다. . . . 유다인들이 하느님에 대해 모르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 . . 우리는 과연 하느님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 나는? 외통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