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51130310 너와 나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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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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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라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인간의 만남에는 두 종류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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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와 그것’의 만남과 ‘나와 너’의 만남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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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것’의 만남이란
비인격적인 만남이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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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따라 이용하고자
갖게 되는 만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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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용 가치가 없으면
사라지게 되는 만남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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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학생이 볼펜을 만났을 때
그것은 ‘나와 그것’의 만남이 된답니다.
이와 반대로 ‘나와 너’의 만남은
인격적인 사랑의 만남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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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상대를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그 만남이 풍요롭게 되고,
발전하며, 아름다워져 가는 경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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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부모와 자식,
연인들의 만남은 ‘나와 너’의 만남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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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참으로 불행한 것은
‘나와 너’의 만남이
점점 더
‘나와 그것’의 만남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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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돈 버는 기계로,
자식을 공부하는 기계로,
엄마를 밥해 주는 기계로
생각하여
상대를 이용 가치에 따라
만나는 풍토로 변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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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보면,
소작인들에게 주인은
‘너’가 아니라 ‘그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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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포도밭을 애지중지 가꾸어
그들에게 믿고 맡긴
주인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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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포도밭을 차지할 욕심에
주인도, 주인이 보낸 종들도, 그 아들까지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삼을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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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폭력은,
바로 인격적인 만남을 바라는
주인과는 달리
비인격적으로 주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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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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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주위의 사람들을
‘너’가 아니라
‘그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냐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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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