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47.130301 회개 . . “……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 . .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과 당신 시대의 군중을 견주셨답니다. . 니네베는 북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의 수도랍니다. . 그러니 니네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랍니다. . 요나는 그러한 원수들을 위해 예언하고 싶지 않아서,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그 도시에서 단 하루만 걸으며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하고 선포했답니다. . 그런데 이러한 소극적인 선포에도 니네베 사람들은 곧바로 회개했답니다. . 그것도 임금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자루 옷을 입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답니다. l 참으로 적극적으로 회개했답니다. . . . 예수님 시대의 군중은 그렇지 않았답니다. . 이들은 니네베 사람들과 다른,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답니다. . 또한 예수님께서는 요나와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시고, 여러 가지 표징까지도 보여 주셨답니다. .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듣고도 제대로 듣지 못하였고, 그러한 표징을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답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 계속해서 표징을 요구한답니다. . 소극적인 선포에도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린 니네베 사람들과 적극적인 복음 선포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예수님 시대의 군중이 뚜렷한 대조를 이룬답니다. . . . 우리는 과연 어디에 더 가깝냐고 합니다. . 혹시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말씀과 표징을 듣고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냐고 합니다. .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순 시기의 여정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합니다. . 나는? 외통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