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송덕문도
아름다운 시구절도
전원가든이란 간판도
묘비명도
부처님도
파지 말자
돌에는
세필 가랑비
바람의 획
육필의 눈보라
세월 친 청 이끼
덧씌운 문장 없다
돌엔
부드러운 것들이 이미 써놓은
탄탄한 문장 가득하니
돌엔
돌은
읽기만 하고
뾰족한 쇠끝 대지 말자
/함민복
한 해를 다 살면 한 해를 정리할 한 문장을 생각해보곤 한다. '잘 살았다, 바르게 살자(이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돌덩이를 가끔 만난다. 서글퍼진다. 저 아까운 돌에…)' 같은 아무런 감응 없는 말 말고 한 해 동안 '나는 몇 그릇의 밥이라도 누구에게 샀던가, 한 해 백 끼니 정도의 밥을 사자' 같은, 삶이 구체적으로 묻어나는 구절로 정리해 보면 최소한의 반성(反省)의 마음이 고이기도 한다.
민주화가 되기 전 유력자의 동생을 기리는 큰 비에 한다 하는 시인이 비문(碑文)을 찬(讚)한 것을 본 적 있다. 참으로 개운찮았던 기분이 지금도 남아 있다. 금석문(金石文)이란 그토록 조심스러운 일일 텐데 너무 간단히들 여겨서 말도 안 되는 시비(詩碑)들도 도처에 많다.
만년(萬年) 세월 꿈쩍없이 서 있는 바윗돌엔 우리 혀끝에서 나온 말에 비할 바 없는 심대한 언어가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삶은 뭇사람들의 마음에 금강석처럼 새겨지는 것! 애먼 돌들을 괴롭히지 말자. 돌이 버려지지 않는가.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