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
로씨야땅에서 보기 드문
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
그 곁을 지날 때면 언제나
가만히 눈물을 머금는다.
저도 몰래 주먹을 쥔다.
가슴이 소리 없이 외친다.
멀리서 아끼는 사랑이
얼마나 애틋한지 아느냐
길 떠난 아들을 잊지 마라
구부정 소나무의 내 나라.
/리진
십여년 전쯤 러시아 여행에서 리진 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노(老) 망명 시인은 편안한 미소로 같은 언어의 종족들을 반가워했다. 나는 불찰로 시집을 챙기지 못했었다. 선생은 "시집을 안 가져왔느냐"고 말씀하시며 울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나는 그 마음의 정체를 가늠하니 가슴이 저렸다. 돌아갈 길 가망 없는 러시아 땅에서 모국어에 얼마나 목말랐을지…. 젖 뗀 아이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함경도 출신으로 김일성대학 영문학부를 다녔고 모스크바 유학 중 반(反)체제 운동으로 1957년 소련에 망명, 일생을 살았다. 이 시는 망명 이듬해의 작품이 된다.
이 시의 소박한 진술은 인간 바탕에 고여 있는 원초적 그리움과 조국에 대한 섭섭함, 고독이 행간에서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천애(天涯) 외로운 곳에서 만나 사귀는 고향 친구, 구부정 소나무. 조상의 선산(先山)을 지키던 그 나무. 하나 끝내 조국은 길 떠난 아들을 잊었을 것이다. 시는 남아 영원하고 아름다운 조국에의 상소문이 되었다./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