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의 노래
나는 거지라네
몸도 마음도 다 거지라네
천지의 밥을 빌어다가
다시 말하면
햇빛과 공기와 물과 낟알을 빌어다가
세상에서 보고 겪은
온갖 잡동사니를 빌어다가
마른 수수깡으로 성글게 엮듯
잠시 나를 지었다네
달이 뜨면 달빛이 새어 들고
마파람 하늬바람 거침없이 지나간다네
그래도 거지는
빌어 온 것들로 날마다 꿈을 꾸고
빌어 온 물과 소금으로 눈물을 만든다네
나는 처음부터 빈털터리 거지였다네 /김영석
거지 앞에 깡통 바구니가 있듯 이 파는 내용이 조금씩 다를 뿐 다 빌어먹는 일이다. 한데 어찌된 건지 빌어먹는 사람들이 주인을 겁주고 야단치고 군림한다. 세상은 이상도 하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부들, 그들이 실은 가장 거짓없다. 주어진 일을 하고 그만큼의 대가로 살림을 한다. 일확천금도 없다. 그저 일에 딸린 애환이 있을 뿐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몸뚱이도, 이 마음이라는 것도 본래 없었던 것이니 '거지' 맞다. 잠시 얻어 입고 다닐 뿐이다. 빛과 바람이, 똥과 오줌이 지나갈 뿐이다. 거기 질문 하나쯤은 가져야 사람이리. 너무 얻어먹기만 하는 건 아닌가? 한없이 부끄럽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