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으려고

시 두레 2012. 12.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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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으려고

 

 

나는 늙으려고 이 세상 끝까지 왔나보다.

북두칠성이 물가에 내려와 발을 적시는 호수,

적막하고 고즈넉한 물에 비친 달은 붉게 늙었다.

 

저 괴물 같은 아름다운 달 뒤로

부옇게 흐린 빛은 오로라인가

이 궁벽한 모텔에서

아직 다하지 않은 참회의 말

생각하며 한밤을 깨어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어디론가 사라질 삶,

징그러운 얼굴들 뿌리치려 밤 새 몸 흔드는 나뭇잎들,

아주 흐리게 보이는 소리 사이로

눈발 같은 미련 섞여 있어 눈물겹다.

 

세상의 길이란 길 끝에서는,

삭은 두엄 냄새 같은,

편안한 잠 만날 줄 알았건만

아직 얼마나 더 기다려야

저 기막힌 그리움 벗어 놓는단 말인가

 

부끄러운 나이 잊고

한밤을 여기서 늙어

머리 하얗게 세도록 바라본다.

 

허망한 이승의 목숨 하나가

몸 반쯤 가린 바람 사이로 흔들리는 것을

/조창환

 

   세모(歲暮)에 가깝다. 하나의 나이테를 겹쳐 두르는 쓸쓸함이 내 뒤의 긴 그림자를 더욱 무겁게 한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헛것으로 살았단 말인가?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간절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헛것으로 산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문다는 사실만으로도 '북두칠성이 내려와 호수에 발을 적시는' 풍경 앞에 서 있게 하는데 하물며 일생의 저물녘에서야 말해 무엇 하랴.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모습은 '징그러운 얼굴들 뿌리치려 밤 새 몸 흔드는 나뭇잎들'같다. 그러나 그 '징그러운'은 실은 '그리운'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운 얼굴들을 어떻게 뿌리칠 것인가. 노경(老境)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일 것이다. 아쉬움과 후회를 삼키는 세모다./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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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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