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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歲暮)에 가깝다. 하나의 나이테를 겹쳐 두르는 쓸쓸함이 내 뒤의 긴 그림자를 더욱 무겁게 한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헛것으로 살았단 말인가?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간절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헛것으로 산 것이다. 또 한 해가 저문다는 사실만으로도 '북두칠성이 내려와 호수에 발을 적시는' 풍경 앞에 서 있게 하는데 하물며 일생의 저물녘에서야 말해 무엇 하랴.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모습은 '징그러운 얼굴들 뿌리치려 밤 새 몸 흔드는 나뭇잎들'같다. 그러나 그 '징그러운'은 실은 '그리운'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운 얼굴들을 어떻게 뿌리칠 것인가. 노경(老境)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일 것이다. 아쉬움과 후회를 삼키는 세모다./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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