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털 파카
더불과 갈대가 어우러진 늪의 하오
동짓달 끝 무렵의 찬바람이 나부낀다.
늪가의 더듬이 오솔길 서걱 이는 풀잎소리…….
둑에 오르면 옷섶 가득 도깨비바늘
갈대소리 서걱서걱 늪이 다시 펼쳐지고
쇠오리 떼로 와 앉아 우포늪은 빛났다.
창녕을 뒤로 한 지 달포도 넘었는데
외투자락 묻어온 우포늪이 서걱서걱
파카를 입고 나서면 항시 늪이 동행했다. /이상범
바야흐로 오리털 파카의 철이다. 치고 빠지고를 반복하며 강도를 높여가는 때 이른 추위의 맹공에 거리는 온통 오리털의 물결이다. 부피 때문에 비둔하고 지하철 안도 더 비좁긴 하지만, 된바람을 막기엔 역시 오리털이 제격인 것이다.
그런데 도깨비바늘이 붙어 아예 늪 한 채를 데리고 온 파카가 있다니, 유다른 따스함이 전해진다. 게다가 우포늪이라면 길이 지키고 물려줘야 할 국내 최대의 천연 늪이 아닌가. 귀한 유산(遺産)인 우포늪과의 동행은 그래서 방한용 파카에도 새로운 서정과 깊이를 들인다. 들 숲에서 곧잘 따라붙던 도깨비바늘의 추억도 아련히 서걱댄다. 한데 이 매서운 추위에 오리가 없으면 어쩔 뻔했는가. 오리털 파카를 입으며 오리들에게 또 고맙고, 미안하다./정수자·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