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괴롭다
荏苒光陰若逝川 (임염광음약서천) 그럭저럭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서
若經此月是新年 (약경차월시신년) 이 달이 지나가면 새해가 다가온다.
蒼天下照開靑眼 (창천하조개청안) 창천이 굽어보며 반가운 듯 햇살 비춰도
白地中留奮赤拳 (백지중류분적권) 대지에 버텨 서서 난 맨주먹 휘두른다.
李白醉供華陰縣 (이백취공화음현) 시골에서 술 취해 으스대던 李白) 같지만
蘇秦恨乏洛陽田 (소진한핍낙양전) 고향에 밭뙈기 없어 한탄하는(蘇秦)의 신세!
何時直跨楊州鶴 (하시직과양주학) 언제나 양주(楊州) 차사 되어 학을 타고 날아갈까?
腰下兼橫十萬錢 (요하겸횡십만전) 허리에는 십만 냥을 기세 좋게 꿰 차고서.
조선 영·정조 시대의 문인인 유진한이 착잡한 감회를 토로했다. 아무 일도 맡지 못해 남쪽 지방을 전전하는 처지에 또다시 연말이 다가왔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맨주먹 하나로 버티고 살아온 나날들! 하늘만이 따뜻한 햇살을 비춰줄 뿐 세상은 차갑기만 하다. 겉으로는 이백처럼 호기가 넘쳐 보여도 속으로는 고향에 작은 전답이라도 있다면 바로 돌아갈 마음이 굴뚝같다. 벼슬도 하고 신선처럼 살아볼 날은 언제나 올까? 산더미처럼 돈이 쌓여 있다면 절대로 사양하지 않고 욕심껏 다 가질 것이다.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꿈이라도 꿔보지 않는다면 너무 괴로운 연말이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