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적(入寂)

시 두레 2012. 10. 16.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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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入寂)                                                       

늙은 재봉사가 1930년 영국산 재봉틀 앞에 앉아 낡은 옷을 깁는다.

 

아슈바타 맑은 이파리가 춤을 춘다.

 

그의 아버지가 재봉틀 앞에 머물 적에도 나무는 자신의 가슴 안에 들어 있는 신비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려주었고 재봉틀은 시냇물처럼 노래했다.

 

늙은 재봉사가 바느질을 멈추고 새소리를 듣는다.

 

밖은 어디이고 안은 또 어디인가.

 

낡은 옷을 살피는 동안 밝음과 어둠이 번갈아 오고 늙은 재봉사가 새소리에 푹 파묻힌다. 재봉틀이 바람에 펄럭인다. /곽재구

 

   여행길에서 문득 한 풍경(風景)을 만난다. 여행이란 무릇 그런 것이다. 한 깨우침의 풍경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사진이나 철썩철썩 찍고 오는 이름난 명승지를 찾는 '관광'에서 어디 그러한 풍경을 만날 수 있던가. 그곳을 이탈했을 때 만나는 숨은 생(生)의 진경(眞景) 속에 참례(參禮)해 보는 것, 그것이 여행이리라. 여기 그러한 풍경이 있다.

 

   대(代)를 물린 낡은 재봉틀에 한 사람이 앉았다. 문은 열려 있다. 마당의 보리수나무가 수런수런 그늘을 늘어뜨리고 바람을 맞아 흔들리고 있다. 무심히 재봉틀 페달을 멈추고 이 사람, 자신의 자리에 예전에 앉아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나도 변한 것은 없다. 다만 지금 아버지는 없고 내가 그 아버지가 되어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새소리의 청명도 그대로다. 아버지가 듣고 고개를 들던 새의 노래를 내가 다시 듣고 고개를 든다. 나는 누구고 아버지는 누구였단 말인가. 안팎이 따로 어디란 말인가.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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